이 집은 누가 지은 것인가

2017. 4. 19. 09:18누리에 말걸기/<낭만파 농부>

이 집은 누가 지은 것인가
[낭만파 농부의 시골살이] 집짓기
    2017년 04월 19일 08:48 오전


집짓기 공사가 끝났다. 작은 마무리와 뒷정리가 남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입주해 살 수 있으니 끝났다고 해서 무리가 없다. 공사를 시작한 지 넉 달 만이다.

그런데 뜻밖으로 덤덤하다. 새것을 대하는 감정이란 좀 유별난 것이고, 집 또한 그 점에서 마찬가지겠다. 더욱이 보통사람이라면 생애에서 가장 큰 돈을 들이는 일이 바로 새 집을 마련할 때 아니던가. 뿌듯함, 설렘 따위가 흔한 심리상태일 텐데 나는 왜 그저 그런 것일까.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공사에 참여해 일이 되어가는 상황을 죽 지켜본 탓일 게다. 아무리 새 집이라지만 너무 낯이 익고, 그 사연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감정이라면 진작 투사되었고, 지금 생기는 것이 있다면 ‘회고형’이 되겠다. 실제로 집안 구석구석 어디에 눈길이 닿더라도 거기에 얽힌 사연이 떠오른다. 하다못해 계단 난간살의 옹이 하나에도 사포질 하던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이다.

왜 안 그렇겠나. 웬만해선 하기 힘든 손수 집짓기다. ‘집 한 채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그 사연을 갈무리하자면 족히 책 한 권은 될 것이다. 집 지으며 느꼈던 ‘현재진행형’ 감회는 시공자(서쪽숲에나무집협동조합)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링크)에 그때그때 적어 두었다. 이 글 또한 그 가운데 일부를 고쳐 쓴 것이다.

좌측면0410

집의 좌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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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본 조망

그러고 보니 오십 줄을 한참 넘어서야 비로소 내 집이 생겼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다. ‘내 집’이란 말에서 묻어나는 첫 번째 관념은 무엇보다 소유권이다.

“이 집이 누구 것이냐?” 했을 때 그 답은 뻔하다. 집이 들어선 부지의 소유자, ‘농가주택’ 건축과 정책융자금 대출 승인을 얻은 자, 건물등기부 상의 소유자로 등재될 자. 모두가 차남호다. 법적 소유권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단언컨대 나는 이 집을 소유권 또는 재산권이라는 견지에서 바라본 적이 없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살 생각으로 지었으니 재산가치나 시세차익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그렇다면 ‘누구 것이냐’가 아니라 ‘누가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도 답은 소유권의 그것과 같다. 다만 ‘식구’가 덧붙는다. 그런데 살갗이 스멀스멀 해온다. 아마도 반평생을 ‘공적 가치’를 추구해왔고, ‘공익적 삶’을 살아보려 애써온 관성이 작용한 탓일 거다. 사실 이 집에서 ‘단란한 삶’이 펼쳐진들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더욱이 단독주택은 생산수단도, 사회적 자본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집짓기에 들어가고 어는 순간부턴가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이 집을 짓는 자, 과연 누구인가?

소유 관념에 따라 부지와 건축비를 낸 사람(건축주)이 짓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공사를 하는 주체는 누가 뭐래도 시공업체다. 이 집의 시공자인 서쪽숲은 완주 일원을 기반으로 “건축주와 시공사, 노동자 모두가 지속가능한, 친환경 목조주택 전문”이라 자임하는 곳이다. 그런데 건축 행위를 실행하는 주체는 잘 알다시피 노동자다. 흔히 ‘목수’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기초를 세우고, 벽체를 올리고, 지붕을 덮고, 외장을 하고, 내장을 하고… 다 목수들이 한다. 결국 목수들이 지은 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서쪽숲 목수 다수가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점. 개중에는 내 친구도 있고, 호형호제 해온 후배도 있고, 이런저런 일로 엮인 이들이 태반이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사람을 빼고는 다 알고 지내온 이들이다.

목수 말고 ‘알바’로 일손을 보탠 이도 있는데 이들 또한 동네사람이다. 공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는 벽지를 대신 골라주고, 누구는 조명기구를 골라주고, 누구는 목수들한테 맛있는 간식을 대접해주고, 누구는 조경에 대해 도움말을 주고, 심지어 사소한 내장재로 뭘 골라야 할지 쩔쩔 맬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와 집어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지던 이까지.

이 집은 그렇게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집 짓듯 함께 지었다. 어디 그 뿐인가. 공사가 진행되면서 건축비가 예산을 넘어서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우리라고 예외가 아니었는데 나중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꽤 큰 급전이 필요했지만 은행에 단기대출을 받기는 어정쩡한 상황. 고민 끝에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펀딩’을 하기로 했다. 이자로 내건 건 ‘술 한 상과 하루 숙박권’.

어차피 동네사람들이 함께 지어온 집 아니던가. 기왕 일손을 보태고, 미적 감각과 재능을 보태준 마당이니 급한 불도 함께 꺼주면 오죽 좋은가. 이것이야 말로 ‘유종의 미’라 할 만 했다. 알음알음 소식을 띄운 지 반나절 만에 펀딩이 마감됐다. 역시 ‘동네사람이 함께 짓는 집’이 맞지 싶었다.

이 집은 결국 차 아무개의 집일뿐 아니라 목수들의 집이요, 동네사람들의 집인 셈이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여기서 말하는 ‘동네’란 자연마을 같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일상적 관계망’을 뜻한다는 점이다. 대체로 고산권(고산면을 비롯한 완주군 북부지역)이 그 범주다.

어쨌거나 나는 이 집에 깃든 동네사람들의 정성과 따뜻한 연대를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소유권을 나눌 순 없겠지만 ‘사용권’만큼은 나눌 생각이다. 나아가 동네라는 테두리를 넘어 더 크게 쓰일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