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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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린다는 것
날씨가 흐려 ‘교교한 달빛’은 아니지만 보름달이 동녘 하늘에 떠올랐다. 횃불을 든 이장님이 푸른 대나무를 두른 달집에 불을 댕겼다. 대마디가 뻥뻥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다. 불붙은 소원지가 허공에 흩날리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지난 대보름날 ..
2015.03.07 -
세번째 가을걷이를 하며
힘든 한 해였다. 무엇보다 날씨 때문에 애를 먹었다. 모내기철 지독한 가뭄으로 온갖 잡초가 우거지는 통에 끔찍한 김매기에 시달렸더랬다. 그러더니 이번엔 ‘장마’라 해야 어울릴 법한 가을비가 두 차례 지나갔다. 나락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자꾸만 늦춰지니 속이 탔다. 마지막 수확이..
2014.11.17 -
‘면민의 날’ 단상
엊그제는 ‘면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 유래나 의미를 장황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겠고, 실상은 어르신이 대부분인 ‘주민위안잔치’라 할 수 있다. 평일에 열리다보니 젊은 직장인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좀 더 엄밀히는 ‘농업-자영업 종사자들의 잔치’ 쯤 되겠다...
2014.09.19 -
'시골살이의 인문학'이란다
“일만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홍성 풀무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얘기라고 한다. 공부와 노동은 함께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몸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농사꾼에게는 흔히 신기술 보급 같은 실용교..
2014.07.16 -
시골은 결코 ‘기회의 땅’이 아니다
시골살이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첫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도시에서 싸들고 온 남은 숙제 해치우랴 겨를이 없었고, 이듬해가 돼서야 농사에 손을 댔다. 농사경력으로 따지면 이태밖에 안 되는 셈이다. 물론 내 정체가 농사꾼임을 스스로 굳게 믿고 있지만 깜냥이 되느냐는 ..
2014.04.25 -
대책 없는 탈주였다
온종일 변산에서 노닐다 돌아왔다. 지난 2월말에도 다녀왔으니 두 달 새 두 번째다. 저번에는 바닷물 떠오는 게 주목적이라 격포항 방파제에서 콧구멍에 바닷바람 들인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름부터가 ‘봄나들이’였다. 우리 ‘친환경 고추작목반’이 벼르고 별러 떠난 길이..
2014.04.25 -
마른 나무에 봄꽃 피듯
사방이 울긋불긋 꽃으로 뒤덮였다. 눈부시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자연의 이 신비로운 조화 앞에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하여 어떤 시인은 그 정경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읊조렸다. 눈부시되 그저 휘황하지만은 않고 슬픔이 밴 아름다움. 그래서 봄은 한편으로 애달픈 계절..
2014.04.06 -
'학부모'로 살아가기
둘째 아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다. 시답잖은 걸 가지고 배배꼬는 게 아니라 ‘학부모’ 얘길 꺼내려는 참이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는 아직 초등학교 학부모로 남아 있다. 맡고 있는 학부모회장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다. 새 학년도가 ..
2014.03.15 -
귀농 4년째를 맞으며
시골살이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이따금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사람인지라 그때그때 소회가 다른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시골로 내려온 게 후회스럽지는 않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고. 10년 전 쯤, 불혹(不惑)을 지나 “이제 ‘부록’으로 사는 인..
2014.03.15 -
이태째 ‘싸전’을 열다
올해도 ‘싸전’을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짼데 ‘장사’라는 일, 여전히 뻘줌하다. 이따금 ‘장사꾼’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제 꼴을 발견한다.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짓는 게 다가 아니고 판로 또한 스스로 열어가야 함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다. 물론 농협수매를 통해 간단..
2013.11.15 -
농사의 가치
며칠째 화창한 봄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늘은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일 새벽부터 온종일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떴다. 비록 ‘벚꽃 개화선’이 아랫녘 어디쯤을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봄기운을 한껏 들이킬 수 있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비소식이 달갑지 않은 까닭..
2013.08.08 -
봄나들이 다녀와 나는 쓰네
온종일 변산에서 노닐다 돌아왔다. 지난 2월말에도 다녀왔으니 두 달 새 두 번째다. 저번에는 바닷물 떠오는 게 주목적이라 격포항 방파제에서 콧구멍에 바닷바람 들인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름부터가 ‘봄나들이’였다. 우리 ‘친환경 고추작목반’이 벼르고 별러 떠난 길이..
2013.04.12 -
피사리 유감
저번엔 100년만의 가뭄으로 애를 태우더니 이번엔 공교롭게도 가을장마란다. 벌써 보름 가까이 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내리 쏟아붓는 건 아니고 오다가 멎기를 되풀이하는데, 햇볕 구경한 지 일주일이 넘어 간다. 일기예보 대로면 이게 9월까지 이어진다니 걱정이다. 곡식이며 과일이 실..
201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