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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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 백중놀이
긴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독이 풀리지 않은 느낌이다. 고산권벼농사두레(벼두레)의 1박2일 백중놀이 뒤끝이다. 김매기를 비롯해 고된 벼농사가 얼추 마무리되는 7월 중하순이 되면 해마다 ‘양력백중놀이’라는 아름으로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보통은 물가나 계곡의 음식점을 찾아 백숙 같은 보양식을 함께 먹고 짧은 물놀이로 더위를 식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는 ‘캠핑 축제’로 판이 확 커졌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아래, 풀벌레 소리 들으며 한여름 밤의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게 준비팀이 내건 기획취지. 그래서 별두레 백중놀이>란다. 하지만 이 삼복더위에, 그것도 섭씨 40도를 훌쩍 넘는 역대 최고기온을 갈아치우고 보름 넘게 열대야가 이어지는 극한폭염 속에? 한편으론 ..
2026.08.13 -
김매기 타령
오늘로 엿새째 김매기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단 한 배미 예외도 없이 논풀이 잔뜩 올라왔다. 다른 이들이 짓는 논도 사정이 비슷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올해 기상 여건이 잡초 발생에 유리하게 작용한 탓이리라. 그 가운데서도 모내기 뒤 날씨가 가물었던 영향이 큰 것 같다. 이 고장 7월은 어차피 논풀이 쑥쑥 자라는 시절이니 김을 매줘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긴 저 옛날처럼 호미 한 자루 들고 세 벌이나 김을 맸던 시절에 견주면 지금은 ‘그저 먹기’ 수준이라 할 만하다. 왕우렁이를 풀어 넣어 잡초를 먹어 치우게 하는 제초기법이 도입된 지 오래다. 무엇보다 관개시설이 잘 갖춰져 논물을 대기가 수월해진 덕분이다. 논물 수위가 높으면 그 자체로 잡초 발아를 억제할 뿐 아니라 왕우렁이의 제초..
2026.07.15 -
미안하다, 뜸부기
저만치 바라다뵈는 산자락에는 콩고물을 뿌려놓은 듯 뿌연 얼룩이 점점이 드리워져 있다. 밤꽃이 흐드러진 6월, 뒷산에 들어서면 귀에 익은 뻐꾸기 울음이 먼저 반긴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노래는 거의 조건반사라 할 수 있겠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말 타고 서울 갈 일도, 비단구두도 없는 세월이지만 주뻐야소(낮에는 뻐꾸기 소리, 밤에는 소쩍새 소리)는 지금이 모내기철임을 일러준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보름 남짓 모내기 준비로 제법 바쁘게 보냈다. 예초기 돌려 논둑에 우거진 풀을 쳐내고, 쟁기질하고, 철렁철렁 물을 잡아 논바닥 삶고(흔히 로터리 친다고 한다) 써레질을 해두었다. 이들 작업이야 이즈음의 ‘루틴’ 같은..
2026.06.15 -
오동꽃 필 무렵
어느새 봄날이 가고 있다. 흐드러졌던 봄꽃 잔치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고, 여름을 재촉하는 풀꽃들이 하나 둘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꽃이 진 나뭇가지에 돋아난 잎새는 나날이 짙푸르러 간다. 그 와중에 이제야 꽃을 매다는 나무도 있다. 아까시 꽃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고, 오동꽃은 아마 낯설 게 틀림없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은 귀에 익었을 테지만 오동꽃이라니. 모양새는 참깨꽃을 닮았지만 연보랏빛을 띤다. 요 며칠 뒷산 오솔길을 걷노라니 어른 엄지 크기의 오동꽃잎이 흩뿌려져 있다. 그 꽃이 질 때엔 아마도 ‘후두두둑’ 소리가 났으리라. 몇 해 전 산불이 휩쓸고 간 앞산과 뒷산에는 그 사이 이런저런 나무가 자생하여 쑥쑥 올라왔다. 이맘때가 되면 그 산허리에 연보랏빛 꽃무리가 점점이 피어나는..
2026.05.07 -
이 와중에 봄날은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벌어진 중동전쟁이 이제 한 달을 넘겼다. 저녁뉴스 첫머리는 아직도 이 전쟁 소식으로 채워지고 있다. 2주간의 임시휴전과 함께 종전협정에 들어갔지만 최근 협상이 깨지면서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사이 숱한 인명이 희생되고 각종 산업시설은 물론 민간시설까지 파괴되면서 전쟁 피해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아가 정유·에너지 관련 설비 파괴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전쟁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가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기름값 폭등과 비닐 농자재를 비롯한 석유화학제품 공급부족, 차량운행 5부제 등으로 피해는 어느새 우리의 삶 속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쩌랴. 전장은 머나먼 저곳이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2026.04.13 -
매화는 아니 피고 포화라니
여느 해 같으면 꽃잎을 열었어야 할 뜰앞의 매화가 아직 저 모양이다. 망울이 좀 부풀긴 했지만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러는 사이 터지라는 꽃망울은 안 터지고 난데없는 포탄이 마구 터지고 있어 걱정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두고 하는 얘기다. 미국의 기만적인 기습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엇보다 끔찍한 건 초등학교를 미사일로 폭격해 2백명 가까운 아이들이 애꿎은 목숨을 잃은 사태다. 날이면 날마다 ‘국제깡패 팔뚝자랑’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가 이를 이란의 자작극으로 몰아가려다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양아치’ 같은 면모를 드러냈다. 미국만 문제냐고? 미국의 실제목표가 중국견제니, 석유확보니, 국내정치용이니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
2026.03.11 -
'인생 제3막' 앞에서
설연휴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다. 벼농사를 짓고, 그것도 농한기에 들어선 농사꾼에게 연휴며 공휴일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명절을 맞아 떨어져 지내던 피붙이들이 잠시나마 회포를 풀 수 있는 것은 연휴 덕분 아니던가. 그나마 차례 지내고 세배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뿔뿔이 흩어지는 게 흔한 풍경이고 보면 그 끝 무렵에 묻어나는 씁쓸함도 여간 아니지 싶다. 이런 씁쓸함을 달랠 겸 동네 친구들과 고창 방장산을 등반하기로 했었는데 때마침 산불 예방기간이라 입산이 금지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일상에서 벗어나 바람이나 쐬려던 참이었는데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동네 뒷산을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한 시간 남짓 뒷산 나들이는 산행이라기엔..
2026.02.20 -
농부는 나이가 들어
병오년, 붉은 말의 해로 접어든 지 며칠이 지났다. 간지 그대로 활기가 넘치고 진취적인 해가 되리라는 덕담이 오간다. 이래저래 그늘이 짙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제발 그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온다. 새해를 맞고 보니 자연스레 나이를 꼽아보게 되고 이제 환갑, 진갑 다 지난 몸이 되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물론 그것을 현실문제로 여기거나 의식하지는 않지만 ‘말값’이라는 게 있어 환갑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가 않다. 그러니까 환갑을 지나면 살 만큼 살았으니 축하 잔치를 베풀고, 언제 세상을 떠도 ‘호상’이 되던 게 그리 오래전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내 기억만 떠들어봐도 그렇다. 농사꾼이던 우리 할아버지는 갓 쉰을 넘기자 농사일에서 손을 뗐다. 느닷없이 고된 농사일을 혼자 떠맡게 된 우리 아버지..
2026.01.16 -
쉬어 가는 페이지
이건 필시 ‘사건’이라고 해야겠다. 어제, 그러니까 이 칼럼 마감일 하루 전이었다. 벼농사두레 단체톡방에 ‘완두콩 농촌별곡 원고 예상’이라는 글 하나가 떡하니 올라온 것이다. 칼럼 필자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누가 뜬금없이 남의 글을 미루어 짐작해 썼다는 말인지. ‘추수를 끝내고 햅쌀밥잔치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어느새 달력이 12월로 넘어갔다’로 시작된 이 글은 극한의 폭염과 가을장마 탓에 버거웠던 올해 벼농사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악조건 속에서 거둬들인 결실, 햅쌀밥 한 그릇의 가치와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며칠 전 잠깐 내리다 만 ‘첫눈’을 둘러싸고 단톡방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과 지난해 이맘때의 비상계엄-내란사태를 엮어 그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겨우살이..
2025.12.09 -
별이 빛나는 가을밤에
뉘엿뉘엿. 뒷산에서 내려오니 앞산 마루에 해가 저물고 있다. 이번 달 들어서부터 날마다 집 뒤켠의 야산을 타고 있다. 워낙 나지막한 산이라 ‘탄다’ 하기가 좀 그렇고 산책이나 소요에 가까운 편이다. 그래도 한 시간 남짓 오르고 나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만큼은 된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바쁘다는 핑계로, 여름에는 덥기도 하거니와 모기 같은 날벌레가 꼬이는 통에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가을이 오고, 그것도 농사가 얼추 마무리되고 나서야, 그러니까 농한기에나 누릴 수 있는 호사라 하겠다. 말하자면 어느덧 농한기로 접어들었다는 얘기고, 농사를 쉬는 대신 다른 일로 바빠지는 시절이다. 벌써 그렇다. 어젯밤 내내, 정확히는 오늘 새벽까지 내리 일곱 편이나 영화를 보고 왔다. 어인 사건이냐? 이름하여 고씨네 별..
2025.11.12 -
가을이 뭐 이래?
하루가 멀다 하고 가을비가 내린다. 아련하고도 낭만이 깃든 가을비 우산속>의 그 비가 아니다. 농사꾼 처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바로 가을비다. 왜 아니 그렇겠나. 결실의 계절이고 거둬들여야 할 것 천지인데 이리 주야장천 비가 내리면 어쩌란 말인가. 내가 짓는 벼농사만 해도 그렇다. 논바닥이 보슬보슬 말라 있어야 수확기계(콤바인)가 별 어려움없이 작동하는데 물이 고이고 진창이 되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는 비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늘만 바라볼밖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게다가 올해는 깨씨무늬병이 크게 번졌다. 벼잎과 줄기에 깨씨 모양의 갈색 반점이 생기고 끝내는 이삭이 고스러져 쭉정이가 되는 곰팡이병이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고온다습해지니 병충해가 극성을..
2025.10.14 -
눈물겹도록 가을
창밖으로 수굿하게 비가 내린다. 뭉게구름 떠 있는 새파란 하늘빛으로 보면 가을을 재촉하는 비일 게 틀림없다. 아직 한낮으로는 따가운 햇볕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새벽녘엔 찬 기운에 어쩔 수 없이 이불을 끌어당기게 된다. 기후체계가 무너지면서 이제 멋쩍게 되어버린 ‘계절의 변화를 막을 자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감탄사가 저절로 떠오른다. 추석 무렵까지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처서 매직’은 작동하지 않았더랬다. 누군가 ‘백로 매직’을 들먹이더라만 백로 무렵에라도 더위가 한풀 꺾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그야말로 날씨가 미쳐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극한폭염에 억눌린 채 그저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던 와중에도 논배미 속 벼포기는..
2025.09.15 -
천우신조
요 며칠 더위가 한풀 꺾였다. 한 달 넘게 푹푹 쪄대던 극한 폭염을 생각하면 선선한 느낌마저 드는 게 벌써 가을로 접어든 기분이다. 물론 한낮으로는 꽤 더운 편이지만 여름이 늘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진다. 뒤꼍을 울리는 매미 소리가 평화롭기만 하다. 어제부터 논둑 우거진 풀을 예초기로 베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짓는 논배미가 꽤 되는지라 며칠 걸리는 작업이다. 한여름 예초는 몇 년만에 처음이다. 작업이 워낙 힘겨워 어느 해부턴가 아예 포기했더랬다. 적어도 한해 세 번은 논둑을 쳐줘야 한다. 모내기를 앞두고 기계작업이 수월토록 하고, 한여름에는 한껏 우거진 수풀을 치우며, 가을걷이를 앞두고는 수확기(콤바인)가 잘 움직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한여름 뙤약볕 아래 예초기를 돌리기란 고역이 아닐 수 ..
2025.08.13 -
미안하다, 발 담가서
누구에겐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지리산 뱀사골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오는 길이다. 이 찜통더위가 누군들 힘겹지 않겠냐마는 오래전에 마련된 일이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헤아리려 모인 도반들과 더불어 나선 길. ‘책거리’가 핑계가 되었다. 이른 아침 길을 떠났는데도 도착하는 순간 그곳은 벌써 이글거리고 있었다. 탐방로를 얼마 걷지도 못했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계곡물에 한참 동안이나 발을 담그고 머물렀다. 역시 계곡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발을 담그고 머잖아 땀이 식었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붙박이고 싶은 심정이라니. 에어컨이라는 파괴적 이기가 아니라도 이 무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실낱같은 길이 있다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에 일순 가슴이 먹먹하다. 하지만 그 자..
2025.07.07 -
모내기 철
어둠이 깃든 초여름 밤, 시골 마을은 꽤 시끄러운 편이다. 울음인지, 노래인지 개구리 떼창으로 요동친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입체음향은 그저 소란스럽지만은 않은 울림이 있다. 그 사이를 뚫고 컹컹 울리는 동네 개 짖는 소리. 그것만으로도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굴뚝에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는 풍경, 노는 데 넋이 나간 아이들 부르는 엄마 목소리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리고 끊일 듯 이어지는 애절한 소쩍새 울음.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저 멀리 그리고 가까이 산허리는 콩고물을 뿌려놓은 듯 부연 밤꽃으로 뭉개졌다. 그러고 보니 유월로 접어들었다. 상추는 꽃대를 올리고, 보리가 익어가는 무렵. 이제 이 고장은 이모작 양파와 마늘 캘 때로 이 시절을 떠올린다. 하지만 유월은 뭐니 뭐니 해도 ..
2025.06.09 -
꽃보다 농사?
풀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무꽃이 봄 들녘 허리를 눈부시게 수놓았다면 지금은 풀꽃이다.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는 얘기. 잔디밭 가장자리, 마당 언저리에 나지막이 피어나는 수레국화, 데이지, 꽃양귀비, 금계국... 길섶에는 이제 간드러진 풍경이 펼쳐지겠지. 농사철로 들어섰건만 농사꾼은 꽃 타령에 넋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가을부터 꽃씨 뿌리고, 모종 옮겨심으며 싹이 텄나, 뿌리를 내렸나 애를 태워왔더랬다. 겨울을 나고 날이 풀려 쑥쑥 올라온 꽃자루마다 망우리가 맺혔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런데 그리 애지중지하던 꽃줄기가 짓눌리고 말았다. 볍씨를 담그던 날, 염수선(소금물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일) 작업에 열중하던 이들이 무심결에 꽃 무더기를 밟고 지나간 것. 그것도 몇 차례나. 그때마다 내 ..
2025.05.13 -
땅 파먹고 사는 자의 4월
4월하고도 중순을 지나고 있는데 요 며칠 날씨가 심상치 않다. 느닷없이 눈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때아니게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이 불어와 그야말로 평지풍파다. 그 바람에 꽃잎이 어지러이 난분분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기후가 길을 잃어버렸음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해온다. 어쩌다 일시적으로 일어난 돌발현상이 아니라 기후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것이 문제다. 지구 온난화가 북극의 온난화로 이어져 ‘북극 증폭 현상’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온난화로 수증기가 늘어나면서 강수현상이 더 격렬해지고, 4월에도 눈이 내리는 변칙적인 날씨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올해 봄꽃은 여느해 만큼 화사하지 않았던 듯싶다...
2025.04.17 -
오는 봄이 슬픈 까닭은
마침내 봄이다. 아직 꽃을 구경하진 못했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꽤 늦고, 여기저기 매화축제가 줄줄이 연기됐다더니 우리집 울 안에도 꽃은 멀어 보이다. 경칩 무렵이면 꽃잎을 열어온 매화는 여태 망울을 꼭 닫고 있고, 산수유는 이제 막 터지는 참이다. 동네 톡방에 활짝 핀 노오란 복수초가 올라와 앞뜰에 나섰다. 날은 확 풀려 푸근하지만 풍경은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다. 풀 나무에는 물이 오르고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화사한 꽃과 새순을 ‘봄’을 구할 수 없으니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은 시절이다. 어디 풍경뿐인가. 비상계엄에 이은 내란 사태가 순리대로 수습돼 정상을 되찾나 싶더니 뜻밖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 걱정이다. 정략적 대응이 판치고 극우세력의 난동까지 겹쳐 시국은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
2025.03.12 -
'저절로 그런' 날들
이번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린다. 자주 내리기도 하거니와 그때마다 펑펑 쏟아져 설국을 만들어 놓는다. 발코니의 네모난 철제 테이블 위에는 어마어마한 백설기가 얹혀 있고, 그 너머로 펼쳐진 앞산 자락은 단색 수묵화를 담은 거대한 병풍으로 돌변한다. 지난 설 연휴에 내린 눈은 고산 땅에 살면서 처음 겪은 큰 눈이었다. 차도로 통하는 진입로에 엄청난 눈이 쌓여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눈이 그치지 않으니 치워봤자 소용이 없는 상황. 늦게서야 이웃 네댓이 달라붙어 두 어 시간 치우고서야 겨우 길이 뚫렸다. 기상용어로는 ‘폭설’이다. 그 폭설에 여기저기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에 견주면 제설작업이란 사실 얘깃거리도 못 되는 일이다. 그리고 엊그제 또 눈이 제법 내렸다. 학습효과라고 할까, 이번엔 차를 미리 도..
2025.02.10 -
길 끝에 또 길이 있다
새해가 되었다. 을사년, ‘푸른 뱀의 해’라고, 지혜를 상징한다고, 잘 계획하고 실행하면 풍요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더러 있지만 아무래도 국권을 잃은 을사조약(1905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더욱이 계엄선포에 이은 내란사태에다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쳐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 나날이 이어지는 시절이다. 상황은 너무도 뚜렷하고 나아갈 길 또한 자명하건만 ‘정략’에 휘둘린 시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뿌옇게 흐려진 형국이다. 하긴 세상일이란 게 죄다 내맘처럼 돌아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겠다. 그래도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헛다리를 짚고 엇박자로 헤매다가도 결국은 제 길을 찾아가게 돼 있다는 얘기다. 그리될 거라고 본다. 설령 그리되지 않는다해도 어쩌란 말인가. 시간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은 ..
2025.01.15 -
대통령제, 그만 둘 때도 되었다
바야흐로 농한기다. 논과 밭, 한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지친 심신을 가다듬고 쉬어가는 시간. 더러 이리저리 쏘다니며 ‘무한대의 자유’를 한껏 누리기도 했더랬다. 그 또한 덧없음을 느끼면서부터 농한기는 삶을 돌아보고 세상의 이치를 참구하는 관조의 시간이 되고 있다. 올겨울도 그랬다. 나락 거둬들여 방아찧고 여기저기 실어 보내고, 논 임대료와 기계삯 방아삯 따위 셈 치르고 나니 바쁜 일이 얼추 끝났다. 이제 평정의 시간으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는데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실패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내란책동. 명색이 ‘대통령 담화’라는데 20세기 중후반에나 들을 수 있던 섬뜩한, 그러나 촌스럽기 그지없는 언어들. 이어진 ‘포고령’은 첫줄부터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원리를 부정했다. 결국 절차와 내용..
2024.12.14 -
찬란한 슬픔의 가을
11월하고도 중순, 산야가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어야 마땅하거늘. 지금 창밖에 비친 풍경은 여전히 푸른 빛이다. 벽을 타고 오른 담쟁이만 발그레하게 물이 들었을 뿐. 여느 해 같으면 ‘마지막 잎새’까지 다 떨어져 덩굴만 앙상할 시점이다. 이 어인 조화인지. 하지만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린다. 올해는 여름이 늦게까지 이어졌으니 단풍 또한 그만큼 늦어지는 게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 게지. 추석이 지나도록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됐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단풍이 늦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로 혼란스러워진 자연현상이 심란한 것이다. 계절을 착각해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니 말이다. 입동이 며칠 전이었다. 초겨울에 접어들 시점이지만 아직도 화창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 걱정만..
2024.11.15 -
기후정의! 강남대로를 가다
다시 서울 가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에 이어 일 년 만이다. 기후정의행진> 완주지역 참가단 85명의 한 사람으로. 지난해보다 참가자가 많아 버스도 두 대에서 세 대로 늘었다고 한다. 지난 2019년 첫발을 뗀 기후정의행진은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전국의 시민이 한 곳에 모여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파하고 기후불평등 해소와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만들려는 자발적 운동이다. 올해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렸다. 3만을 헤아리는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절박한 호소를 쏟아냈다. 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으리으리한 고층빌딩이 늘어선 강남대로-테헤란로를 행진하며, 그 심각성에 견주어 무심하고, 무기력한 기후위기 대응에 각성을 호소하고, 급진적인 체제-정책전..
2024.09.10 -
엎친 데 덮친 그 다음
한 줄기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더니 따갑게 내리쬐던 땡볕이 잠시 누그러졌다. 지난 한 주일 어간의 날씨가 이 모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열대우림 지역에서 나타나는 스콜(squall)과 비슷한 현상이다. 아니 그냥 스콜이라 해도 틀림이 없겠다. 오랜 가뭄 뒤에 늦게 찾아온 장마전선이 여느 해보다 오래도록 한반도 상공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 땅의 기후가 이미 아열대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이 시원한 소나기가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가뭄이 오래 이어지던 지난 6월 하순, 어쩔 수 없이 가뭄>이라는 노래가 입안을 맴돌았었다. (농촌별곡> 7월호) 어서 빨리 장마가 찾아와 이 가뭄을 씻어주기를 학수고대하던 나날. 그런데 “이 가뭄 언제나 끝나 무슨 장마 또 지려나” 더..
2024.07.29 -
김매기, 폭폭한 노릇
김매기 엿새째. 어느 정도 짐작은 했더라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김매기로 말하자면 벼농사 짓는 농사꾼의 숙명이다. 가뭄이 극심했던 7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뒤적여보니 꼬박 6일, 실제 작업은 22시간을 매달렸노라 그해 기록은 말하고 있다. 올해는 그 기록마저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안밤실 네 마지기 배미가 문제다. 오늘 아침나절까지 20시간 가까이 김을 매고 있지만 여적 거기를 못 벗어나고 있다. 다른 배미에는 거의 풀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유독 이곳만 말썽이다. 여기 물을 대주는 분토 저수지 수문이 지난해 장마에 무너지면서 제방공사가 진행 중인 까닭이다. 올해 말에 가서야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공사를 마칠 수 없었는지 ‘늑장행정’에 분통이 터질 노릇..
2024.07.08 -
모판나르기 또는 난장 파티
모내기가 시작됐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그 바쁜 와중에 틈을 내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농사가 반 농사요, 모내기가 끝나면 벼농사 8할은 마친 셈이 된다. 하여 벼농사두레 공동작업(두렛일)은 못자리 만들기와 모판 나르기가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두레의 아름다운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일이 가장 고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달포 전 조성한 물못자리에 앉힌 볏모는 그 사이 별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모내기는 다 자란 이 모들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배미에 옮겨 심는 공정이다. 그러자면 모를 잘 심을 수 있도록 ‘본답’을 꾸며야 하는데 이를 ‘논배미 만들기’라 한다. 그 과정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 먼저 우거진 풀을 베어내고 물을 잘 가둘 수 있도록 논둑을 손봐야 한다. 요즘은 ‘..
2024.06.12 -
" '두레'란 게 뭐여? "
주뻐야소.낮에는 뻐꾸기, 밤에는 소쩍새라. ‘뻐꾹 뻐꾹 봄이가네~ 뻐꾹 뻐꾹 여름 오네~’ 계절이 바뀌는 소리. “솥/적/다”고 풍년을 예고하는 애절한 울음. 어쨌거나 벼농사가 시작됐다는 신호 되시겠다. 안 그래도 우리는 5월 첫머리를 모농사로 수놓았다. 볍씨를 담가 싹을 틔워 파종한 모판을 못자리에 앉히는 한 주 남짓한 두렛일이 끝난 것이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애를 먹기도 했지만 마무리는 아름다웠다. 못자리에는 지금 앙증맞은 볏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볍씨 담그는 공정부터 문제가 생겼다. 소금물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염수선 작업은 가뿐했다. 처음 해보는 새내기 일꾼들에게는 날계란을 띄워 염도를 맞추는 과정부터가 신기한 경험이었을 터. 막걸리 잔으로 목을 추겨가며 여유잡고 그 다음 열탕소독을..
2024.05.13 -
꽃비 나리고 새잎이 돋으면
봄인가 했더니 벌써 꽃잔치가 끝나가고 있다. 매화는 진작에 지어 손톱 만한 열매가 맺었고, 개나리를 지나 벚꽃과 배꽃 잎이 허공중에 꽃비로 흩날린다. 지난 며칠 화사한 빛으로 간드러지게 피어났던 복사꽃도 조금씩 제빛을 잃어간다. 봄날은 이렇듯 허망하게 흘러가는 겐가. 눈부신 꽃잎을 떨군 들녘은 이제 연두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꽃잎 무리가 솜사탕처럼, 뭉게구름처럼 점점이 박혀 있던 산자락도 차츰 푸른 기운이 짙어간다. 좀 서글프고 야속도 한 시절이 흐른다. 그도 잠시, 아련한 춘심을 추스르고 보면 이게 다 농사철이 되었다는 표식임을 깨닫는다. 농한기,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먼저 마음을 다잡고, 슬슬 몸도 풀어준다. 걱정이 앞서다가도 막상 농사에 접어든다 싶으면 맘이 ..
2024.04.15 -
봄, 벼농사를 지어보자
아직 꽃샘추위가 더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만 들녘엔 봄기운이 뚜렷하다. 뜰앞의 매화가 첫 망울을 터뜨린 게 경칩이던 며칠 전이다. 같은 고장이라도 자리에 따라 또는 품종에 따라 꽃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울안의 매화는 늘 그 자리를 지켜왔으니 날씨의 흐름이 지난해와 엇비슷함을 알겠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러저러하게 통하는 것일까. 바로 그날 동네 단톡방에 ‘화암사 나들이’를 알리는 벙개가 떴다. 느긋한 시절이고, 마침 달리 볼일도 없어 길을 나섰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라 단출한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여섯이나 모였다. 절로 가는 들머리에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얼마 전 내린 비 때문인지 계곡물은 유량이 제법 되었고, 곳곳에 뭉게뭉게 개구리 앞이 실려 올챙이로 깨어나려는 참이다. 샛..
2024.03.12 -
여느 때와는 다른올해 정월대보름을 보내며
[낭만파 농부] 벼농사두레 대표 6년 By 차남호 2024년 02월 29일 09:33 오전 이 얼마 만인가. 한 주 내내 겨울비가 이어지고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 볕이 쨍하다. 다사로운 햇볕 한 줌이 그토록 소중한 시절. 어느새 잔뜩 물오른 들녘이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 벙근 매화 꽃망울마냥 봄기운도 저절로 부푸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에 기별을 전하는 것도 퍽 오랜만이다. 지난해 끝 무렵 ‘고산권벼농사두레’가 임기만료에 따른 임원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글을 쓸 엄두를 내기 어려운 탓이었다. 내가 대표를 맡았던 지난 6년을 갈무리하는 일도 그랬거니와 후보로 선뜻 나서는 이들이 적어 애를 먹어야 했다. 다행히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이들로 새 집행부가 들어서 홀가분하게 짐을 넘겨줄 수 있었다. 그..
2024.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