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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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가을걷이를 하며
힘든 한 해였다. 무엇보다 날씨 때문에 애를 먹었다. 모내기철 지독한 가뭄으로 온갖 잡초가 우거지는 통에 끔찍한 김매기에 시달렸더랬다. 그러더니 이번엔 ‘장마’라 해야 어울릴 법한 가을비가 두 차례 지나갔다. 나락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자꾸만 늦춰지니 속이 탔다. 마지막 수확이..
2014.11.17 -
‘쌀 전업농’의 신세타령
‘38년만의 이른 추석’이 지난 뒤끝이라선지 한결 넉넉하고 느긋한 느낌이 묻어나는 오후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이삭이 눈에 들어온다. 많이 여물어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다. 수고로웠던 한여름이 언제냐 싶게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구슬땀깨나 쏟았던 흔..
2014.09.19 -
시골 세월호집회 넉달째
어느덧 열여덟 번째다. 지난 5월17일 시작된 이 고장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집회(함께하는 품 제12호) 말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 되면 이곳 사람들은 어김없이 읍내시장 광장에서 촛불을 밝힌다. 벌써 넉 달을 넘겼다. 일을 처음 꾸미고 이끌었던 <녹색평론> 독자모임한테도 이건 뜻..
2014.09.19 -
‘면민의 날’ 단상
엊그제는 ‘면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 유래나 의미를 장황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겠고, 실상은 어르신이 대부분인 ‘주민위안잔치’라 할 수 있다. 평일에 열리다보니 젊은 직장인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좀 더 엄밀히는 ‘농업-자영업 종사자들의 잔치’ 쯤 되겠다...
2014.09.19 -
'시골살이의 인문학'이란다
“일만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홍성 풀무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얘기라고 한다. 공부와 노동은 함께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몸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농사꾼에게는 흔히 신기술 보급 같은 실용교..
2014.07.16 -
'설상가상' 밭농사
김매기가 다가 아니다. 양파에, 고추에, 들깨까지 사람 손길을 기다리는 놈들이 줄을 섰다. 양파는 모내기를 마치자마자 캐서 다듬고, 망자루에 담아 옮겨 쌓았다. 요즘도 길을 가다보면 빈 소막이나 야외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양파자루가 눈에 들어온다. 생산량이 너무 많아 팔리지를..
2014.07.16 -
김매기? 되살아나는 '악몽'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눈을 떴다. 이젠 시골사람이 다 됐나보다고? 하긴 저녁 숟갈 놓기가 무섭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늦어도 새벽 다섯 시에는 몸을 일으키는 게 요즈음의 시골풍경이다. 해가 뜨면 날이 금방 더워지니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일하는 게 이롭기 때문이다. ..
2014.07.16 -
이 세월을 어찌 건널까
벼농사가 시작되기 전, 양파밭 풀매고 고추모 보살피면서 이런저런 강의 준비로 정신없을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몹시 바쁠 때였고 공중파 TV도, 종이신문도 끊고 사는지라 처음엔 사태의 윤곽조차 알지 못했다. 이틀 뒤에야 사태를 가늠할 수 있었고, 줄곧 무거운 납덩이를 가슴에 ..
2014.06.10 -
어떤 '농활대'
‘모 농사가 반 농사’라고 했다. 벼농사를 지어 나락을 거두기까지는 대략 여섯 달 쯤 걸린다. 이 가운데 모를 가꾸는 기간은 한 달 남짓. 전체의 1/6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중요도로 따지면 절반이나 된다는 얘기다. 그 만큼 깍듯하게 정성을 기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모 농사..
2014.06.10 -
"나는 농부다!"
마을 뒤 와우산은 이제 신록을 지나 녹음으로 치닫고 있다. 논들이 줄지어선 들판에는 연보랏빛 자운영 꽃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지고 있다. 봄날이 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 숱한 ‘꽃타령’을 뒤로 하고 마침내 벼농사 철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벼농사는 올해로 3년째. 이제야 그럭저..
2014.06.10 -
정녕 봄이더냐?
온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엔 날씨가 쌀쌀해서 ‘봄비’가 맞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젠 3월 중순, 오후가 되어 날이 풀리니 그 봄비가 틀림없다. 추적추적 들녘을 적시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은 싱숭생숭, 아련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래, 너도나도 봄비를 노래했지. 봄비는..
2014.03.15 -
'학부모'로 살아가기
둘째 아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다. 시답잖은 걸 가지고 배배꼬는 게 아니라 ‘학부모’ 얘길 꺼내려는 참이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는 아직 초등학교 학부모로 남아 있다. 맡고 있는 학부모회장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다. 새 학년도가 ..
2014.03.15 -
귀농 4년째를 맞으며
시골살이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이따금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사람인지라 그때그때 소회가 다른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시골로 내려온 게 후회스럽지는 않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고. 10년 전 쯤, 불혹(不惑)을 지나 “이제 ‘부록’으로 사는 인..
2014.03.15 -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이번 겨울이 그닥 ‘화려하지’ 못했던 건 시절이 어수선한 탓도 없지 않았다. 4~5년 전 앓았던 ‘정치적 우울증’이 재발했지 싶다. 박근혜 정권 1년이 되어갈 즈음 도진 증상이다. ‘말이 안통하네트’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이리 ‘생떼’를 쓰는 정권은 처음이다. 논리도, 근거도..
2014.01.14 -
초라한 농한기
살림살이를 시골로 옮긴 지 세 번째 겨울을 나고 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이 고장 겨울정취에 가슴이 설레더니 이젠 그것도 심드렁하다. 그 대신 식솔들을 떠올릴 때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낀다. 사실 농촌에서는 이 한겨울에도 시설채소로, 축산으로 쉴 틈이 없을 만큼 ..
2014.01.14 -
정래불사정(正來不似正)
말띠, 그것도 ‘청마의 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는 이제 잦아들었다. 그래도 120년 전 동학농민군의 결기를 떠올리는 ‘갑오년 갑오세’는 아직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보름 남짓 흘렀지만 여전히 세상은 ‘새해’ 언저리에 걸쳐 있다는 말씀. 하여 지금쯤은 다가올 한 해를 내다보면..
2014.01.14 -
들어는 봤나? ‘온새미로’!
고추농사 얘기를 하면서 몇 차례 ‘친환경 고추작목반’을 소개한 바 있다. 때가 때인지라 고추농사는 이제 모두 끝났다. 고추 뒷그루(후작)로는 양파를 심었다. 지난 9월초에 모를 부었고, 싹이 난 뒤로는 두 어 차례 모여 풀을 뽑아줬다. 포트모판에 씨를 뿌리거나 포트모판에 기른 모종..
2013.11.15 -
이태째 ‘싸전’을 열다
올해도 ‘싸전’을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짼데 ‘장사’라는 일, 여전히 뻘줌하다. 이따금 ‘장사꾼’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제 꼴을 발견한다.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짓는 게 다가 아니고 판로 또한 스스로 열어가야 함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다. 물론 농협수매를 통해 간단..
2013.11.15 -
수확의 기쁨? 고통도 있어!
황금물결이 일렁이던 들녘은 이제 칙칙한 흑갈색으로 되돌아갔다. 휑한 바람이 불고 공기가 차가워졌다. 며칠 전 대입수능시험을 치렀고, 엊그제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으니 그럴 때도 되었지 싶다. 늦가을이요, 겨울의 문턱이다. 올해 가을걷이는 모두 끝났다. 그런데 이번엔 벼 수확..
2013.11.15 -
거둬들이는 마음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 온다. 시간을 열흘만 되돌려도 불볕더위가 가을까지 삼켜버릴 기세더니 맥이 다 풀릴 지경이다. 그래도 살갗을 스쳐가는 이 바람은 기껍기만 하다. 그런데 난데없는 회오리가 소름을 돋운다. ‘이석기 사건’으로 이름 붙여진 뜻밖의 사태를 두고 하는 얘..
2013.09.12 -
2013년 모내기, 그 처절했던 기록
2013년 모내기, 그 처절했던 기록 오늘에서야 모내기를 ‘모두’ 마쳤다. 지난 6월12일부터 시작했으니 20일 넘게 걸린 셈이다. ‘무슨 모내기를 그리 오래…’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맞다. 서른 마지기(6천평) 논에 이앙기로 모를 낸 기간은 사흘 남짓이었다. 하지만 모내기..
2013.07.19 -
봄날이 가고 있다네
세차게 내리치던 빗발이 수굿해졌다. 말 그대로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는 통에 고추밭에 비닐 씌우기(멀칭)를 하다가 도망치듯 돌아온 참이다. 비에 젖은 척척한 작업복을 갈아입고 가늘어진 빗줄기를 내다본다. 오늘 작업은 며칠 전부터 잡혀 있었다. 애초 오전 10시께 ..
2013.05.03 -
누가 '봄'을 보았다 하는가?
언제까지 갈까 싶더니만 이제는 겨울추위가 걷혔다. 아직 ‘봄의 소리’를 읊조릴 만큼은 아니지만 달라진 바깥기운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봄기운이 몹시도 반가운 것은 지난겨울이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이 내린 탓일 게다. 정말 추웠다. 오죽하면 봄나물을 찾아보기가 힘들까. 봄나..
2013.03.21 -
농한기... 시골에서 겨울나기
계사년, 뱀띠해가 열리고 사흘이 지났건만 여적 옴짝달싹 못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요 며칠 새 큰 눈이 내린 데다 강추위로 쌓인 눈이 녹지 않은 탓이다. 우리가 무슨 산골 오지마을에 사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너른 평야는 아니지만 만경강 끼고 벼농사 지을 정도는 되는 곳이다. 그..
2013.01.07 -
처음맞은 '갈무리 철' 풍경
엊그제부터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마음만 있었지 아직 대둔산 단풍도 구경 못했는데 벌써 초겨울로 접어드니 적잖이 서운타. 그래도 이즈음은 한해농사를 갈무리하는 철이라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우리 집도 어제, 널어 말린 마지막 나락을 창고에 쌓는 것으로 올해 벼농사의 대미..
2012.11.10 -
피사리 유감
저번엔 100년만의 가뭄으로 애를 태우더니 이번엔 공교롭게도 가을장마란다. 벌써 보름 가까이 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내리 쏟아붓는 건 아니고 오다가 멎기를 되풀이하는데, 햇볕 구경한 지 일주일이 넘어 간다. 일기예보 대로면 이게 9월까지 이어진다니 걱정이다. 곡식이며 과일이 실..
2012.08.30 -
백년만의 가뭄..."니들이 '둠벙'을 알아?"
조금 전 논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다. 요즘은 아침과 저녁 두 차례 씩, 자전거를 타고 4킬로미터 거리에 흩어져 있는 논배미 물관리를 하는 게 주요일과다. 모내기 끝나고 한 달 남짓은 물대기에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길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터다. 그런데 올해는 ‘백년만의 가뭄’..
2012.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