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라는 것

2018. 4. 20. 18:21누리에 말걸기/풍진세상(風塵世上)

어제 아들 녀석이 얽힌 ‘학교폭력’ 문제를 간략히 올린 건 ‘우발적’ 행동이었다. “이 노릇을 어이할까?”는 해법을 구하기보다는 하소연에 가까웠다.(고 지금에 와서 느끼고 있다) 

학교폭력? 사실 이번이 처음 아니다. 이미 5년 전에도 홍역을 치렀더랬다. 그 때는 큰 애(딸 아이)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첫해, 2학기가 시작될 즈음 사달이 났다. 동급생 여자 아이한테 ‘금품갈취’에 해당하는 폭력을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폭위’가 열렸다. 그 때 나는 학폭위 회의에 참석해 “가해학생을 징벌하는 방식의 조치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게 ‘교육적인 해결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 엄마도 처음엔 거기에 동의했는데 막상 학폭위에 나와서는 “가해자를 격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피해자 부모의 의견이 엇갈리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더 다급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폭력사태와 관련해 단짝으로 지내던 아이들한테 ‘배신’을 당한 아이가 학교를 완강히 거부했던 것. 딸아이와 가해그룹(가해자와 배신한 단짝)이 함께 하는 자리를 어렵게 주선했는데, 딸아이는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보이는 태도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는데, 아이들만 만난 그 자리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딸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던 모양이다. 
학교를 그만 둔 딸아이는 그 뒤 긴 ‘야인시대’를 보냈고, 검정고시-대입 삼수 끝에 올해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 5년 세월은 내게 더 할 수 없는 안쓰러움으로 남아 있다. 
그랬는데 둘째마저도 이 모양인 거라. '학교폭력에 열패한 유전자'를 물려준 자책감이 몰려들었다. 
지금 둘째 아이는 이 문제가 학교사회에 공식화되는 걸 두려워한다. 그저 제가 조용히 기숙사를 떠나 가해학생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으로 끝일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다.
나는 아이의 그런 태도가 마땅치가 않다. 아직 반골기질이 살아 있어선가? 당장의 두려움 때문에 부당한 폭력에 굴복하지 말기를, 당당히 맞장 뜨는 ‘용기’를 내주기를 바란다. 아이한테도 그렇게 얘길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교육적 해결책’이라는 게 성립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얼마간은 지켜볼 생각이다. 다들 지혜를 빌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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