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교수의 음악 이야기

2020. 2. 23. 12:48누리에 말걸기/<낭만파 농부>

[낭만파 농부] '농한기 강좌' 첫 강의
    2020년 02월 19일 11: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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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농한기강좌> 시즌이다. 어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번 강좌는 그 콘셉트와 일정이 지난해와 거의 비슷하다. 우리 ‘고산권벼농사두레’ 회원을 중심으로 강사단을 꾸리는 ‘사회기여활동’으로 격주 월요일에 다섯 번 열린다.

이번에도 ‘강좌를 어찌 꾸릴지 머리를 맞대보자’는 핑계로 서해(고창 구시포) 바다를 다녀왔더랬다. 겨울바다, 좋지 아니한가. ‘연찬모임’이라 이름을 붙였지만 그 프로그램이야 뻔하다.

바로 앞에 그림 같은 해변이 펼쳐진 펜션에 여장을 푸는 사이에 펄떡이는 활어회를 떴다. 아뿔싸! 밥 지을 쌀을 깜빡 잊고 왔단다. 명색이 벼농사두레 연찬모임에 쌀이 없어 밥을 못하다니. 조금 뒤 더 놀라운 소식이 들여왔다. 후발대로 도착한 그룹 가운데 승용차 안에 쌀 포대를 상비하고 있는 식구가 있다지 않은가. 참 벼농사두레 회원답지 아니한가. 좀 지체되긴 했지만 푸지게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다음은?

그래도 밥값은 해야 하니 ‘농한기강좌 주제를 뭘로 할지’ 토론을 벌였다. 대충 끝날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박 터지는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밤새 다투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니 서둘러 토론은 마무리. 그리고 밤이 이슥토록 이어지는 음주가무.

그리하여 확정된 올해 농한기강좌 주제는 음악이야기-시골 맞춤 적정기술-함께 책읽기-씨앗 받는 농사-쌀의 인문학.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생태적이고 행복한 시골살이’로 간추릴 수 있겠다. 그리고 어제 첫 강좌가 펼쳐졌다.

밤새 눈이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설국’이 펼쳐져 있었다. 보름 전 내린 어정쩡한 첫눈의 기억을 속 시원히 깔아버린 푸짐한 눈. 보기 좋았더라, 하지만 길이 막혔더라. 햇볕은 좋았지만 종일 찬바람이 불었다. 그 썰렁한 날씨 탓인지 객석도 좀 썰렁했다.

그래도 정년을 앞둔 노 교수의 음악이야기는 뜻밖에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뮤직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동네에 이름이 짜한 이다. 이번엔 ‘나의 음악인생’을 풀어냈다. 초등학생 시절 멋들어지게 불렀던 최희준의 <하숙생>으로 시작해 가곡과 클래식, 팝음악, 저항색채의 포크, 국악, 뉴에이지 따위로 이어지는 70년 가까운 파노라마.

어찌 술을 부르지 않을 손가. 사실 농사는 농주와 뗄 수 없는 관계 아니던가. 그걸 핑계로 농한기강좌 객석의 간이 테이블에는 막걸리와 맥주가 올라 있다. 누가 그랬다. “이건 벼두레가 아니라 비어(beer)두레여~ 발음도 똑같네!”

고산에서 이십 리 쯤 떨어진 화산에 사는 강사는 안 그래도 승용차 대신 드물게 다니는 버스를 타고 왔다. 반드시 술판이 벌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따라서 강의가 끝난 뒤 질문은 사절, 뒤풀이 자리에서 받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정리됐다.

술집은 바로 옆 생맥주(beer) 가게. 질문은 하나도 없고, 다들 자기 음악세계를 풀어놓기 바쁘다. 그런

데 웬걸? ‘민중가요’로 화제가 모여졌다. 그 최신 경향으로 ‘연영석’이라는 이름까지 호명되더니 흥을 주체하지 못한 분위기는 급기야 라이브콘서트 모드로 일변한다.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 돌려 부르기. 물론 술집 영업시간도 있으니 밤을 지샐 순 없는 노릇이고, 하나 둘 취기가 오르면서 술판을 제풀에 꺼지는 법.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날의 흥취가 톡방으로 전이돼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어제 강의의 ‘울림’이 크네요. 새벽 눈 뜨기 전, 잊고 있던 가곡을 머릿속으로 흥얼거리며 다음 노래자리를 준비…”

“사회적 책임을 동반하는 예술가로써의 목소리. 가령 정태춘, 그 다음 86세대는 김광석, 안치환도 있었죠. 80년대생 또래에겐 서태지와 신해철이라는 시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서태지는 희미하게 증발했고 신해철은 꺼져버렸어요. 그래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어요.”

“어제 강좌 덕에 오늘 종일 회사에서 이어폰 끼고 음악 듣는 무리수를… 벼두레는 벼농사 공부만 시키는 게 아니라 좋은 거 같아요~ㅋ”

물론 세상일이라는 게 늘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오늘 하루 종일 누워서 겔겔~ 6학년 올라오니까 옛날 같지 않네.”

결국 예술적 향기를 뿜어대던 대화는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들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