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4. 09:52ㆍ누리에 말걸기/노동인권 이야기
모두가 노동법에 무심한 세상에서 노동조합 만들기 | ||||||
[이용석의 노동자로 살며 읽기]'10대와 통하는 노동 인권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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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회사가 방해해서 어려웠던 게 아니라, 우리가 노동조합, 노동법 같은 것들에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대학시절이 부끄러워졌다. 노동 해방, 계급 혁명 같은 말을 잘도 떠들어 대고,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요구를 하며 파업을 하면 경제 투쟁에 매몰되었다고 쉽게 이야기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혼자서 노동 운동 다 하는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나는 정작 노동법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었다. 게다가 나는 내가 노동자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선배들처럼 공장에 위장취업 한다면 모를까 내가 노동자가 된다는 상상은 해 본적이 없었다. 딱히 무슨 인생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닌데, 부모님이 재벌이나 어디 국회의원도 아닌데도 말이다. 한 마디로, 나는 노동과 관련된 것에 굉장히 무지하다는 것을 노동조합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아주 기본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업별 노조와 산별 노조의 차이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오픈샵과 유니온샵이 어떻게 다른지를 공부했다. 노무사 강연을 듣기도 하고, 책을 함께 보기도 하고, 심지어 고등학교 사회교과서까지 찾아봤다. 노동 3권이 무엇인지 수능 준비하면서 분명히 외웠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도 산 넘어 산이었다.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데, 무얼 준비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노사 관계에 대해서도 아무런 경험이 없었으니 말이다. 닥치는 대로, 언론노조에서 교육도 따로 받고, 다른 출판사나 언론사 노동조합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 조언도 듣고 했지만 갈증이 다 가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단협을 시작하고 나서 우리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노동법에 대해 우리만 무식한 줄 알았는데, 경영진들은 우리보다 더 노동법을 모르고 있었고, 게다가 무식한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용자들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만 예로 들자면, 우리가 회사에 건넨 단협 초안에 한 달의 소정 근로시간이 209시간으로 되어있었는데, 대표이사는 자기가 직접 세어봤는데 한 달에 근로시간이 209시간이 안 된다며 따졌다. 우리가 그건 노동법에 그리 규정된 것이라 했더니, 법이 잘못 되었다며 버럭 성질을 냈다. 주 5일을 일하면 하루의 유급 휴일이 주어지게 되어있는데, 대표이사는 주말 가운데 하루가 유급 휴일인 것을 모른 채 애먼 노동법만 탓한 것이었다. 노동자도, 사용자도 노동법에 무지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싸움과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노동자에 대해,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법에 대해 초중고등학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 다니면서도 맑스는 읽되 노동법은 읽지 않았고, 노동운동사를 공부하되 노동조합의 전략과 전술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내내 제대로 된 노동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가르치지 않은 학교 교육도 문제였지만, 노동 교육을 할 수 있는 책 한 권 제대로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노동 교육에 대해 수수방관한 셈이다. 이런 생각은 노동조합에서 하종강 선생님을 모셔서 조합원 교육을 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하종강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난 조합원들 눈빛이 유난히 반짝여서도 그랬지만, 강의에서 들은 다른 나라들 사례들이 나를 자극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국가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전략과 전술 같은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모의 단체교섭을 한 학기 내내 하기도 한다. 강연 도중 보았던 어느 영상에선가 노동 관련 수업 비중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노동자가 될 것이고 일부는 경영자가 되겠지만 경영자도 노동자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비중이 높은 게 전혀 아니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움을 참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 대부분이 노동자가 되는 우리 나라는 노동 교육을 학교에서는커녕, 운동권에서도 제대로 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출판사 철수와 영희에서 나온 ‘10대와 통하는 노동 인권 이야기’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물론 노동 교육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는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공부하려는 노동자들이나 청소년들이 있다면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1,2부에는 노동과 노동자의 개념부터 노동의 역사,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과 임금 노동자의 탄생, 노동자들이 가지는 권리에 이르기까지 노동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성인들이 읽어도 충분한 내용이다. 이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노동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성인이나 청소년이나 노동 관련해서는 백지 상태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3부에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3부 내용이 더 풍성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알바’나 ‘실습생’으로 불리던 것들을 ‘청소년 노동’이란 이름으로 바로 잡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노동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도,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노하우나 지혜도 없어서 실수도 많이 했다. 나와 내 동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할 때, 이런 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이 책에 나온 것들은 그저 이론일 뿐일지도 모른다. 당장 대한문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기본적인 이야기만 담겨있을 수도 있고, 지금 단협 중인 보리 출판사과 그린비 출판사 노동조합에게는 이 책에 적힌 이야기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이런 책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야구 경기에서 불규칙 바운드에 대처하려면 수비 기본기가 탄탄히 다져져 있어야 하듯, 사용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횡포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기본기가 탄탄하게 다져져 있어야 한다. 그런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책, 10대 뿐만이 아니라 새로 생긴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함께 읽어도 좋을 책으로 ‘10대와 통하는 노동 인권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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