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3. 14:03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점심 무렵부터 빗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야말로 ‘애타게’ 기다려온, 달디 단 비. 오랜 가뭄에 안밤실 논은 온통 논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저수지 수문을 열어볼까 했더니만, 저수지 또한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수문에 손도 못 대고 힘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더랬다. 그제 일이다. 그러니 이 비를 ‘꿀물’에나 견줄 수 있을까. 그래선가 이 밤 개구리들의 떼창이 어찌나 정겨운지 모르겠다.
그 동안 잘도 맞아떨어지던 일기예보가 6월을 지나면서 번번이 빗나가던 터였다. 하여 비소식은 있으되 정작 비는 내리지 않는‘마른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번에는 스마트폰 일기예보에 일주일 내내 우산이 떠 있었다. 우연찮게 그 중에 하나가 맞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별안간 일기예보 정확도를 따지겠다는 건 아니고, 요즘 농사가 과학기술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려는 참이다. 더더구나 벼농사는 이제 ‘기계’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인구의 80% 넘게 농사를 짓던 시절에 견줘 채 5%에도 못 미치는 오늘, 1/20로 줄어든 노동력으로 농업이 유지되는 현실은 농기계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인력의 ‘대체재’를 넘어 ‘필수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밭농사 ‘기계화율’이 50%를 약간 웃도는 반면 벼농사는 98%(2015년 기준)에 이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 나만 하더라도 볍씨 담그기부터 모농사, 논갈이, 모내기, 거름주기, 가을걷이에 이르는 모든 작업공정을 기계에 의존한다.하다못해 풀베기, 웬만한 짐 나르기까지도 그렇다.
문제는 농기계 연료가 석유라는 점에서 오늘의 ‘석유농업’은 지구생태에 엄청난 부담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농사의 ‘생태‧문화 가치’를 ‘산업 가치’보다 더 중시하는 나로서는 농기계가 꺼림칙할 밖에. 되도록 농기계를 멀리 하려 애써왔고, “트랙터도 없이 어떻게 1만평 논농사를 짓느냐?”는 의문과 경탄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 또한 쓸 수 있는 농기계는 다 쓴다. 다만 ‘내 기계’가 아닐 뿐이다. 예초기, 살포기 같은 소형 농기계 말고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따위 대형농기계 작업은 모두 남한테 맡기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석유를 많이 먹는 농기계를 쓰지 않는다’는 알량한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물론 터무니없는 진단이다.
실은 ‘기계 공포증’ 비슷한 거다. 기계조작에 몹시 서툰 ‘기계치’인데다 공간감각까지 엄청 무딘 탓이다. 농사를 지은 뒤로는 해마다 보험사 ‘긴급출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 올해는 더욱이 유난스러웠다.
한 번은 모판, 또 한 번은 웃거름을 싣고 둑길을 가던 트럭을 길섶에 빠뜨리고, 농로에서 후진하다가 앞바퀴가 포장길 난간에 걸치고, 심지어 트럭 짐칸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이앙기를 내리다가 세차게 넘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겪었다. 가히 ‘농기계사고 버라이어티쇼’를 연출한 셈이다.
그러니 더없이 쓸모가 많은 트랙터 한 대 장만하는 데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트랙터를 살 수밖에 없건만 좀체 개운치가 않다. 먹자니 이래저래 걸리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처럼 말이다. 날이 밝으면 두 번째 GMO 개발반대 집회가 열리는 농촌진흥청으로 향할 텐데, ‘GMO 없는 세상’보다 대형농기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인 까닭인가. 속 시원한 해결책 어디 없소? 월간 <완두콩>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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