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3. 17:35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4월이 열렸다. 아울러 온갖 풀 나무도 여기저기서 활짝 꽃잎을 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봄.
완주에서 맞는 여섯 번째 봄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마음 한 구석 불안감이 몰렸더랬다. 놀고먹던 좋은 시절(농한기)이 끝나가는 아쉬움, 곧 시작될 농사철을 맞는 부담스러움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겠다. 그러나 올해는 그야말로 봄이다. 꽃피는 들녘은 그저 눈부시고, 아련한 설렘과 스멀스멀 피는 바람에 마음이 달뜨는 건 어인 까닭인지. 딱히 뭔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지 싶다.
우리 벼농사모임의 격주 ‘농한기 강좌’도 이제 막판이다. 어떤 협업체계를 갖출지 정하고, 농기계-농기구 조작실습을 하고 나면 곧장 볍씨를 담그게 된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벼농사모임은 그새 덩치가 크게 불었다. 애초 유기농 벼를 짓는 예닐곱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기술을 배워보자는 것이었는데, 1년이 흐른 지금은 서른 명을 헤아리게 됐다. 물론 벼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예비농부가 훨씬 많다. 그 가운데 열 명 남짓이 올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 집에 한 배미씩이다. ‘생계형’은 어림도 없고 자가 식량에, 가까운 친지들과 나눌 만큼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노릇이고,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니겠나.
벼농사모임의 식구가 늘어난 것은 빠르게 늘고 있는 귀농인구와 관계가 깊지 싶다. 문제는 그렇게 몰려드는 이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완주로 이사온 지 이제 3년이 넘어가는 명호 씨만 해도 그렇다. 농사지으면서 아내, 아이와 함께 “흙에 살리라” 했지만 아직도 직장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생계수단인지라 일터도 그렇고 급여도 만족스럽지 않다. 얼마 전부터는 도시 살 때 다니던 직장에서 복직을 제안해와 가뜩이나 고민스럽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가.
사실 ‘농업인’으로 생활을 꾸리는 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고된 농사일이 엄두가 안 날뿐더러 농업소득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 “뙤약볕 아래 양파밭 매면서 수지타산 속셈을 해봤더니 호미를 내던지고 싶더라!”는 얘기. 오죽했으면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이란 책까지 나왔을까. 지난 가을걷이 이래 아직도 울분이 가시지 않는 농업정책까지, 이게 다 농사꾼으로 사는 게 얼마나 버거운지 보여준다.
물론, 나처럼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길만이 정답이라 보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는’ <반농반X의 삶>(시오미 나오키 지음, 더숲)도 훌륭한 선택지라 할 수 있다.
다만 쉽지 않은 줄 알면서도 왜 시골살이를 택했던지 떠올려 보자. 훌훌 털고 가볍게 살자는 것 아니었나? 삶에도 부담이고, 지구생태를 망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체제에서 벗어나자는 것 아니었나 이 말이다. 그러니 소비도 줄이고, 물질적 욕망도 줄이고, 자연과 더불어 홀가분하게 살아가자는. 도시에서 살 때의 소비수준과 번잡한 살림을 지속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그럴 바엔 ‘뭣 헐라고’ 시골 사나.
이래저래 명호 씨가 ‘자연 속 삶’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한동안 힘이 들더라도 벼농사, 밭농사 조금씩 늘려 농사를 익히는 한편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고. 명호 씨 힘내시라! 월간 <완두콩> 2016년 4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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