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1. 12:05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봄비가 내린다. 4월로 접어든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는 거리의 벚꽃이 벌써 지고 말았다. 빗방울 맺힌 울안의 복사꽃, 배꽃, 명자꽃이 함초롬하다. 비가 내리는 봄날엔 벗들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여야 제격이건만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술잔이 아니고 찻잔이면 또 어떠리. 창문 너머 내리는 빗줄기에 눈길을 맞춘 채 조곤조곤 시절을 되작이는 벗과 함께라면.
참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고. 비가 내려도 보송보송한 비닐하우스에서, 지붕 널찍한 축사 안에서, 편의시설 잘 갖춰진 사무실에서 맑은 날과 진배없이 열심인 시대에 어인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는 핀잔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든 말든 나는 자연을 거스르는 대신 순응하고 합일했던 옛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벗과의 사귐 또한 그 시절에는 계곡물 흐르듯 멋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가령 백아절현(伯牙絶絃), 거문고 달인 백아와 나무꾼 종자기에 얽힌 얘기를 꼽을 수 있겠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오직 한 사람의 친구,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일찌감치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부터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 부르게 됐다는 고사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서 비롯된 관포지교(管鮑之交)도 있다. 주로 포숙아가 관중을 끝까지 믿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를 떠받치는 일화로 짜인 고사다. 형편이나 이해를 떠나 무조건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이다. 이에 관중은 줄곧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라 했다고 한다.
얘기가 사뭇 극적이다. 백가쟁명에 군웅할거,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가 배경이고 보면 그럴 법도 하겠다. 가만히 따져보면 난세에는 평온하고 진득한 관계맺음이 무척 어려울 듯싶다. 어쨌거나 난세가 되었든 태평세가 되었든 옛 사람들의 사귐을 가늠하기는 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 이 시대는 어떨까.
많은 이가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떠올릴 것이다. 워낙 잘 알려진 수필이라 누구나 한 번 쯤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성 싶다. 지란지교(芝蘭之交),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뜻한다. 유안진이 꿈꾸는 지란지교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쉽지가 않고, 읽는 이를 짓누른다. 예컨대
“우리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솔직히 말해 나는 그렇게 못한다. 게다가 이 선에서 그치지 않고 비슷한 내용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를 모두 끌어 모으자면 ‘이룰 수 없는 몽상’으로서의 꿈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 벗을 대하는 나의 믿음과 진심이 부족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사귐이라는 것이 이렇듯 고귀한 일이고, 그리 되도록 애를 써야 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죽마고우’라 내세울 친구도 거의 없고, 고향집에 일이 있어 초딩시절 친구를 만나도 머쓱하기만 하다. 세상에 나가서는 주로 험지를 떠돌며 반평생을 보냈다. 사십 줄에 접어들어서는 그나마 훌훌 털고 ‘신선이나 되어보자’고 시골로 내려왔다.
그 와중에 그 동안 사귀었던 벗들로 떨려나갔다. 물론 부러 털어낸 건 아니고, 몇 해 동안은 이런저런 핑계로 챙기기도 하고 챙겨지기도 했더랬다. 지금도 가끔 ‘눈 먼’ 벗들이 찾아들긴 한다. 그리고 10년이 넘어간다. 이젠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되어가는 것이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그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가끔 아쉬울 때도 있지만 애가 타거나 태우지는 않는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이자정회(離者定會)라,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리.
그들이 떠난 자리는 새로운 인연이 채우게 돼 있다. 고산에 내려와 연을 맺은 그 모두를 ‘친구’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우리 칭구 아이가!”라는 말이 그닥 마뜩치가 않다. ‘친구인지 아닌지’를 서로 확인하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래, 친구면 어떻고 아니면 어쩔 건데? 아니, 친구가 대체 무엇이관데!
나는 한문에서 비롯된 친구(親舊)라는 말보다는 ‘벗’이란 말이 더 좋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그 관계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풀이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벗 사이에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삶의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실행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세계관이 어긋나지 않아 삶의 지향점이 일치하는 관계여야 하겠지. 정치관이나 종교관, 철학은 이 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일치한다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있다손 치더라도 오늘의 복잡한 세계에서는 그런 일치가 오래 지속되기도 어렵다. 따라서 그 가운데 일부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크게 상반되는 점이 없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벗이 될 수 있지 싶다. 정치나 사회운동에서의 동지나 학문의 동학, 종교적 수도의 도반 따위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설령 엇갈리는 점이 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다름을 존중하면서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서로에게 이로운 벗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고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왔다. 이웃사촌부터, 학부모, 공공생활, 협동조합, 지역교육, 노동인권, 사회운동, 친목활동, 문화-예술활동, 학습모임, 작목반활동, 생태보전 활동, 농사모임... 돌아보니 참으로 다양한 영역과 분야를 넘나들었다. 그 가운데는 과거완료형도 있고, 현재진행형도 있다. 의무감이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고 추구하는 일이었기에 그 모두가 뜻 깊고 보람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
때문에 나는 벗이라는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함께 지향하고 실행하는 그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기농사을 함께 지으니 뜻 깊은 일로 하나가 되는 것이요, 참된 지식을 나눔으로써 함께 진실의 길을 걷는 것이며, 환경파괴를 막는 일에 함께 힘을 보탬으로써 생태적 삶을 열어가는 셈이다. 그러니 관계보다는 그 과정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과정보다 인연을 맺은 그 사람에 마냥 끌리고, 그 사람이 목적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는 우정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경지일 게 분명하다. 거기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지니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한 가지만 더. 그 자체를 추구할 일은 아니지만 벗을 사귀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술이다. ‘술친구’라는 말이 아니라도 술은 관계맺음에서 소중한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물론 경우에 따라 공과가 갈라지지만 내 경우 고산에서의 지난 10년 술이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물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차남호
10년 전 귀농하여 ‘고산권 벼농사두레’의 일원으로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산다. ‘농부’라는 딱지가 무색할 만큼 일머리가 서툴고 게으르다. 자연생태에 되도록 부담을 주지 않고 살다가 시나브로 스러지는 게 삶의 목표다.
[시골살이 매거진 <느림>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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