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8. 13:38ㆍ누리에 말걸기/<낭만파 농부>
‘양력백중놀이’를 다녀온 다음 날, ‘백만 년만에’ 기타 줄을 갈았다. 갈아야 할 시점이 지나도 한참 지났건만 농사철로 접어들면서 때를 놓쳤더랬다. 바쁘기도 했거니와 뜻하지 않게 일이 꼬이고 어수선해져 단 몇 십 분, 겨를을 내지 못한 탓이 컸다. 그 몇 달 동안은 당연히 기타 한 번 손에 잡을 한 자락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지.
벼농사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숨가쁜 새끼치기로 식구를 늘리는 영양생장에서 이삭을 올리고 나락을 여물게 하는 생식생장으로. 농부는 이때 ‘중간물떼기’를 해서 힘을 보탠다. 아니 농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고 해야 하겠다.
모를 내고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새끼를 친 볏대는 이삭을 올리지 못하는 ‘헛새끼’이다. 그래서 ‘무효분얼’이라고 한다. 나락은 맺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양분을 빨아들이니 농부로서는 아예 새끼를 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이득이다. 그래서 논물을 빼내 생장(새끼치기)을 가로막는 것이다. 아울러 논바닥을 드러내 산소를 불어 넣음으로써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래야 본격적인 생식생장 국면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한껏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작업지침-중간물떼기]
모내기하고 한 달이 넘었습니다. 논배미에서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리는 ‘중간물떼기’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모내기 날짜에 따라 내일부터 순차적으로 논배미에서 물을 빼주세요. 일단 바닥이 갈라질 때까지 물을 떼고, 그 다음부터는 사나흘 단위로 물을 걸러 대는 방법을 쓰는 게 좋습니다.
벼농사두레 단톡방에 이런 내용의 작업지침을 올리고 나니 농사공정이 또 하나 끝났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기타 줄을 갈아 끼우는 여유도 생겼을 테고.
사실 모를 낸 뒤 한 달 넘게 물대기에 종종거려야 했다. 이 시기에는 벼뿐 아니라 잡초도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게 마련인데, 물을 깊게 대주지 못하면 풀어 넣은 우렁이도 뜯어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논배미를 돌아보며 물꼬를 손보고, 논두렁이 새는 곳은 없는지 살피면서 물 높이를 유지해야 했다.
삐끗하면 고단한 김매기를 피할 수 없다. 단오잔치 손모내기 체험답이 그랬다. 논배미가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며칠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더니 피가 빼곡이 올라왔는데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돼서야 사정을 알게 됐다. 어쩌겠는가. 여기저기 급보를 띄워 구원을 요청했더니 여남은 명이 일손을 보태 이틀 만에 어렵사리 피사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다행인 건 모내기 직후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내내 적당히 비가 내려준 덕에 물 걱정을 덜었다는 점. 한꺼번에 쏟아붓는 집중호우 없이 장마가 지나가 논둑이 터지고 벼포기가 휩쓸리는 일이 없었던 것도 요행이라면 요행이겠다.
이렇듯 큰 어려움 없이 한 고비를 넘겼으니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그래서 양력백중놀이다. 깊고 깊은 동상 계곡으로 떠났다. 고비를 어렵잖게 넘어와서인지 여느 해보다 참가자가 줄었다. 그래도 서른 명이 훌쩍 넘는 사람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시절음식인 닭백숙으로 몸을 보하고 난 뒤 어른이고 어린이고 할 것 없이 수량이 제법 되는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물 싸움을 하고, 헤엄 솜씨를 겨루는 시합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한 때. 출출해진 속을 컵라면으로 달래면서 아쉬운 마무리.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몇몇은 읍내 미소시장으로 돌아온 뒤에도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신입회원 신고식’을 핑계로 음주가무를 펼치고.
어쨌거나 우리가 중간물떼기에 들어간 그 날 ‘장마 끝, 본격 무더위’를 알리는 일기예보가 떴다. 반갑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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