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6. 20:37ㆍ누리에 말걸기/<낭만파 농부>
처서날,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렸다.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 ‘더위가 그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절기 처서. 흔히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하여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때. 그렇더라도 햇살은 아직 후끈 내리쬐어 작물의 광합성을 도와야 마땅하건만 비가 내리다니.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천 석을 감하여’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고 했던가. 맑은 바람과 따사로운 ‘남국의 햇볕’을 받아 기운찬 가루받이로 ‘장벼를 패야’ 하거늘 처서비(處暑雨)라니 이 어인 노릇이란 말인가.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 남짓 늦게 모를 냈으니 이삭 패는 시기도 그만큼 늦겠거니 한가닥 위안거리가 떠올라 논배미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레 전엔가 논배미마다 볏대를 뽑아와 ‘해부’를 해보았더니 그 시점에서는 이삭을 밴 ‘수잉기’를 지나고 있었더랬다. 그러니 아직은 이삭을 내밀까 말까 한 시점인 셈이었다.
그런데 웬걸? 모낸 날짜와 상관없이 논배미란 논배미에는 벼 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있지 않은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난 이태 내리 백수현상-목도열병으로 대흉작을 맞았던 기억이 파르르 떠오른다. 그 모두가 이삭이 올라오는 시점, 장마와 연관돼 있었지. 그러고 보니 가슴 한복판이 스산해진다.
심란함을 달래보려 우산을 받아 쓰고 텃밭을 둘러본다. 엊그제 사다 심은 배추 모종에 오늘은 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일까? 한여름을 지나면서 피고 지기를 거듭하던 백일홍은 이제 거칠어진 줄기에 끝물 꽃송이를 피워올리며 시들어가고 있다. 진보랏빛 천일홍은 아직 싱싱하다. 그 옆으로 하얗게 무리 지어 피어난 부추꽃은 처연한 빛을 띠고 있다.
어쨌거나 이제 햇볕은 갈수록 누그러질 테고, 그 덕분에 뭇 풀들(이라 쓰고 잡초라 읽는다)은 성장세가 더뎌질 것이다. 그래 한여름 내내 미뤄온 논둑 치기를 조만간 시작해야 하겠지. 사실 무더위 핑계 대고 참 오래도 빈둥거렸지 싶다. ‘어정 칠월, 건들 팔월’, 어정거리면서 (음력)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낼 판이다. 이번 주말에 우르르 몰려 내려오겠다는 오누이들과 더불어 우거진 선영 벌초도 하겠구나. 바야흐로 풀 베는 시절.
가을이 그렇게 열리는 모양이다. 앞으로 일주일 어간의 일기예보는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밑돌고 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어느 날 눈을 뜨니 가을이 와 있더라” 이거 아닌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제 언제 그랬냐는 듯 ‘기후위기’라는 말을 까먹을 것이다. 까먹을 게 따로 있지만 설령 까먹지 않더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그뿐이긴 마찬가지.
이제 가을이 오겠지만 지난 여름은 어느 시인의 싯귀와 달리 결코 위대하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종말의 음울한 그림자는 짙어만 간다.
뜻하지 않게(어디 뜻한 사람이 있겠냐만) 코비드19에 감염되었다. 이번이 두 번째이니 돌파감염인 셈이다. 지난번보다 증세가 심해 세상과 담쌓고 지낸 일주일 남짓 힘들게 보냈다. 벼두레 톡방에 그 사실을 알렸더니 너도나도 ‘인류애’를 전해왔다. 그래, 그 인류가 문제지. 인류만 사라지면 지구는 번성을 구가할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눈물겨운 인류애 때문에라도 기후위기가 극복되기를 바란다.
사실 처서 무렵에 기대를 걸고 기다려왔더랬다. 내 생애에서 딱 한 해를 빼고는, 처서만 되면 신기하게도 무더위가 꺾이던 경험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처서가 ‘구원’의 상징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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