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8. 13:35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온대기후로 다시 돌아가기는 영 글러버린 것 같다. 아침나절부터 섭씨 30도를 웃돌고, 35도는 우습게 넘기니 말이다. 최장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억수장마도 벌써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아열대기후가 확실히 자리를 잡은 듯하고, 전문가들도 다들 그리 판단하는 모양이다.
불볕더위와 장맛비를 핑계로 일손을 놓은 지 여러 날. 덕분에 신상은 편하지만 속은 그닥 편치가 않다. 아직은 별 일 없지만 이놈의 날씨가 언제 또 까탈을 부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올 농사가 지난해와 견줘 너무 순조로워 되레 불안한 점도 있다.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못자리를 절반 넘게 망치는 바람에 씨나락을 두 번 담가야 했고, 일손이 모자라 모내기에 큰 애를 먹었다. 하지만 모내기 뒤로는 큰 탈이 없었고, 벼도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불안하다는 겐가?
지난해 이 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가빠온다. 난생 처음 뛰어든 벼농사. 모내기 뒤에는 한 동안 물을 깊이 대야 잡초가 올라오지 않는다는 기초지식조차 몰랐다. 우렁이를 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게다가 ‘100년만의 가뭄’까지 덮치는 바람에 논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피사리’에 나섰고, 한 달 반을 뙤약볕 아래서 보냈다. 피사리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끝을 보고 말겠다’는 오기까지 발동한 탓이었고, 결국은 ‘상처뿐인 승리’로 끝났다.
이런 기억 때문에 올해는 바짝 긴장해 물높이를 관리하고 우렁이도 넉넉히 풀어 넣었다. 그 덕분인지 피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실제로 올해 피사리는 채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한 달 반과 사흘의 차이, 그만큼 실감나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괜히 불안해질 만도 하다.
이게 다 피사리의 힘겨움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피사리를 하지 않는 길도 있다. 제초제를 쓰면 ‘한 방’에 끝난다. 그 방법도 아주 간단해진 모양이다. 그런데 왜?
‘농사를 안 지으면 안 지었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쓸 순 없다! 그것이 내가 농사지으며 바탕에 깔고 있는 생각이다. 지구 생태계에 되도록 부담을 주지 않고, 몸에 해로운 먹거리는 만들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것만으로 생태보전을 위한 노력을 다 했다 할 수 없다. 수입 사료를 먹은 가축의 배설물로 만든 퇴비, 수입 깻묵 따위로 만든 유기질비료 따위는 괜찮은 지 고민스러운 것이다.
하여 유기농을 넘어 ‘자연농’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는 피가 별로 올라오지 않는 바람에 이웃마을 광수 씨네 피사리를 돕는 여유까지 부렸다. 광수 씨는 지난 10년 남짓 자연농 벼농사에 매달려왔다. 농약-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유기질거름과 우렁이조차 넣지 않는 ‘무투입(無投入)농법’이 그것이다. 아직 성과가 흡족하진 않지만 광수 씨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벼농사는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이 기본이다. 탄소배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논농사보다는 덜 하지만 밭농사 또한 트랙터나 관리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무투입에 더해 ‘무경운(無耕耘)’ 밭농사를 짓는 자연농법도 있다. 며칠 전 우리 친환경고추작목반이 견학을 다녀온 진안의 한 농가가 그랬다. 밭을 갈지 않을 뿐 아니라 풀(잡초)을 매지도 않는다. 대신 낫으로 밑동을 베어 그 위에 덮어놓는 ‘초생멀칭’을 한다. 말하자면 ‘땅의 질서’에 순응하고, 본래의 땅심을 되살림으로써 자연생태와 공생하는 농사인 셈이다.
그렇다면 ‘생태농사’의 끝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하긴 수렵과 채취에 의존하던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것 자체가 ‘환경파괴’의 첫걸음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또한 덧없는 물음일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날씨, 가시지 않는 먹거리 불안을 떠올리면 ‘농촌현실’만 내세우기가 미안해진다. 그래서 더 아픈 것이겠지. <완두콩>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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