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2. 21:07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갈수록 도시살이가 힘겨워지면서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기는 이가 빠르게 늘고 있다. 언론매체에서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귀농인구’로 굳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귀농인구는 크게 ‘귀농인’과 ‘귀촌인’으로 나뉜다.
도시민을 유치하려는 지방정부는 관련 조례 등에 귀농과 귀촌을 가르는 기준을 정해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체로 영농규모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는 ‘지원대상’을 따질 때나 필요한 기준일 뿐, 세간에서는 좀 다르게 이해한다. 시골로 내려와 살되 농사를 생업으로 하면 귀농, 그렇지 않으면 귀촌. 이게 실제 통용되는 뜻이 아닌가 싶다. 나야 어떤 기준에 비추어도 귀농에 해당한다. 지금 짓고 있는 벼농사도 꽤 되고, 여럿이 함께지만 고추농사도 짓는다. <완두콩>에도 ‘어우리 사는 귀농인’이라 나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귀농인은 생업인 농업에만 매달려야 하나? 물론 그리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호에선 거푸 농사 얘기만 했으니 이번엔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해서 뜸을 들였다. 다름 아닌 교육이다.
어쩌다보니 올 한 해 동안 삼우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을 맡게 됐다. 우리 둘째아이가 다니는 학교인데, 내 뜻과는 상관없이 “다른 대안이 없다”해서 그리 됐다. 교육관련 활동경험도 없고, 교육철학이라 해봤자 ‘경쟁교육, 입시교육 대신 인간교육을 하자’는 게 전부였던 나로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게 된 셈이다. “정 힘들면, 올해는 그냥 쉬어가도 뭐랄 사람 없다”는 말에 혹했는데, 역시 ‘꼬드김’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눈코 뜰 새가 없다.
학부모회를 운영하는 건 일도 아니다. ‘단오맞이 한마당’ 같은 행사부터 급식·도서관 도우미 같은 일상 업무까지 학교를 지원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해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나아가 9월에 교장-교감이 한꺼번에 임기가 끝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할 ‘학교발전협의회’ 구성에도 힘을 보태야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도내 1백여 곳 혁신학교 학부모회가 함께 꾸린 협의회 행사참여와 관련활동, 청소년노동인권 관련활동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이 늘어나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본업이 농사인지 학부모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 많은 일을 그럭저럭 해치우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지난 8월30일에는 ‘삼우네 밤마실 축제’라는 행사를 치렀다. 새학기를 앞둔 가을의 문턱에서 학부모와 아이들이 밤바람 쐬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내자는 취지였다. 교육청이 지원하여 학부모회가 주최하는 사업이었다. 한 달 넘게 준비를 했는데 막판에는 집행부가 날마다 모여 온종일 준비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자리를 함께 했고, 이이들 또는 식구들이 펼치는 장기자랑과 영화를 즐겼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헌신하다가 다른 학교로 떠나는 나영성 교장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눈물 나는 시간도 있었다. 바쁜 와중에 준비는 버거웠지만 그 마침표는 뜻밖에도 ‘보람’이었다.
그런데 이 불길한(?) 느낌은 뭔가. 어차피 이리 되었으니, 학부모 신분이 유지되는 향후 6년 동안은 ‘교육’이라는 큰 테두리를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예감 말이다. 과연 어떤 일이 또 ‘꼬리’를 물게 될는지. <완두콩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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