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5. 20:30ㆍ누리에 말걸기/<작은책>
시골살이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첫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도시에서 싸들고 온 남은 숙제 해치우랴 겨를이 없었고, 이듬해가 돼서야 농사에 손을 댔다. 농사경력으로 따지면 이태밖에 안 되는 셈이다. 물론 내 정체가 농사꾼임을 스스로 굳게 믿고 있지만 깜냥이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깜냥은 그만두고 농사꾼으로서 제대로 처신하고 있는지조차 누가 일러주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4월에 접어들어서도 우리는 활짝 핀 벚꽃을 좇아 저 멀리 섬진강가 구례, 하동 땅을 누비고 다녔다.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다음날에는 집 가까이 고즈넉한 산사를 찾아 봄기운에 흠뻑 취하고 왔다. 농사철이 다 되도록 강으로, 산으로 이리 쏘다니는 모습에 페이스북 친구들의 핀잔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다 농사는 언제 짓느냐!”고. 혹 동네 어르신들이 그 꼴을 봤다면 철딱서니 없다고 혀를 찾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게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한테 4월 초순은 아직 농사철이 아니다. 우리 집 주요작목인 벼농사는 4월 하순은 돼야 몸을 푼다. 그제야 볍씨를 담그고 촉을 틔워 못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요즘은 밭농사, 그 가운데서도 시설재배를 하는 이들이 바쁘다. 시설재배야 사시사철 안 바쁠 때가 없지만 이 고장은 요즘 딸기를 거둬들이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잎채소는 수확 철이 따로 없고, 하우스 봄 감자와 조생양파는 수확 철이 막 지나고 있다. 하우스 안에서 ‘비가림 재배’를 하는 고추는 지금이 한창 모종을 옮겨 심을 때다.
한편 노지재배도 바쁘긴 매한가지. 양파와 마늘은 풀을 매줘야 하고, 하지감자는 씨를 묻어야 한다. 고추의 경우 한 뼘 크기로 자란 모종을 살피는 데 부쩍 공을 들여야 한다. 하우스 안에서 키우지만 밤 시간엔 보온덮개를 씌워주고, 낮 시간엔 벗겨내어 햇빛을 쪼여준다. 흙이 마르지 않게 하루 한 차례 물도 줘야 하고.
이 고장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농사풍경은 대충 이렇다. 유기농-제철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나로서는 시설재배가 ‘무섭게’ 느껴진다. 물론 노지 밭농사는 하고 싶고, 지금도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 집’ 농사는 아니다. 밭에서는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게 보통이다. 무릎과 고관절이 짓눌리는데, 속설에 따르면 남성의 신체구조는 이를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옛날부터 내려온 ‘남성-논농사, 여성-밭농사’ 분업구조 또한 그리 이해하고 있다. 내가 겪어본 바로도 밭일은 여간 고역스러운 게 아니다.
문제는 우리 집에 여성노동력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내기인 아내는 시골로 살림을 옮길 때부터 “내가 농사를 지으리라 기대하지 말라” 쐐기를 박았고, 나 또한 군말 없이 받아들였던 터다. 게다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바람에 아내는 여적 직장조차 옮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 집에는 이래저래 밭일을 챙길 인력이 없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벼농사 전업농’처럼 되고 말았다. 그럼 ‘지금도 밭농사는 하고 있다’는 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이른바 공동경작을 한다는 얘기다.
우리보다 먼저 귀농해 살고 있던 주란 씨가 앞장서 생태농사 공동체를 함께 꾸렸다. 벌써 한 해가 넘었다. 처음엔 그냥 ‘작목반’으로 부르다가 나중엔 취지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다. <온새미로>라고, ‘자연 그대로’, ‘생긴 그대로’라는 뜻이 담긴 순 우리말이다. 수익창출보다는 생태 가치를 구현하는 데 더 큰 뜻을 두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제철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토종 씨앗을 살리고 보급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우리 집처럼 배우자가 농사를 안 짓고, NGO나 서비스업종에서 일한다는 공통점도 동병상련이랄까, 함께 어울리는 배경이 됐다. 바쁠 땐 서로 품앗이 하고, 농산물판로를 함께 뚫으며, 할 수 있는 만큼 밭농사를 함께 지어왔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함께 일한 시간보다 봄에는 꽃놀이, 여름엔 계곡 물놀이, 가을엔 단풍구경... 같이 놀러다닌 시간이 더 길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새로 개장한 읍내시장에 토요일마다 공인노점을 열어 손수 기르거나 채취한 유기농-제철 먹거리를 팔고 있다. 특히 주란 씨와 정화 씨의 열성이 남다르다. 얼마 전부터는 기증받은 중고물품을 파는 ‘아나바다 벼룩시장’까지 열고 있는데, 그 수익금은 ‘공익’을 위해 사용할 참이다.
그러나 <온새미로>의 알맹이는 뭐니 뭐니 해도 공동경작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4백 평 남짓 고추농사를 지어 결실을 나눴다. 하반기 들어서는 뒷그루로 양파를 심어 지금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올해 초부터 두 번째 고추농사를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는 토종고추를 심기로 하고 어렵싸리 씨앗을 구해왔는데 그만 싹을 틔우지도 못한 것이다. 그것도 세 번이나 실패하는 바람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나마 우연히 손에 넣은 신품종 고추씨앗이 싹을 틔우고, 잘 자란 덕분에 올해도 공동경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쯤에서 ‘목가풍’이나 ‘전원교향악’을 떠올릴 이가 적지 않을 듯싶다. 그리고 곧장 스멀스멀 의문이 피어오를 것이다. 요즘 농촌 현실이 팍팍하다던데 저리 건둥건둥 일해도 살 만 한가? 이건 <체험 삶의 현장>같은 방송내용하고 딴 세상 아닌가!
왜 아니 그렇겠나. 밭 4백 평 공동경작으로는 언감생심 ‘소득’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해 거둬들인 고추는 얼마간은 공동기금으로 떼고, 1/n로 현물을 나눴다. 알뜰하게 판매한 사람도 있지만 내 경우 얼추 김장하는데 쓰고, 나머지는 선물하거나 여기저기 나눠 줬다. 생활비는 당연히 저마다 짓는 농사소득에서 나온다. 누구는 소를 키우고, 누구는 2천 평 밭농사를, 나는 벼농사를 짓는다. 여기에다 배우자가 벌어오는 ‘농업외 소득’을 보태 넉넉잖은 살림을 꾸리는 것이다.
이게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 시설재배나 밭농사를 크게 하는 이들은 수확철인 요즘 까맣게 속이 타들어간다고 한다. 값이 폭락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산업’으로 짓는 농사는 ‘투기’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작목선택, 농사기술, 노동량과 질 따위는 이제 별반 의미가 없다. ‘운’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이다.
시골은 결코 ‘기회의 땅’이 아니다. 자연생태를 해치지 않고 더불어 살겠다는, 물질문명일랑 좀 모자란다 싶게 누리고 살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견뎌내기 힘든 곳이다. 한밑천 잡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매달려봤자 결국은 ‘도찐개찐’이다. 그럴 요량이라면 차라리 도시에 남아 ‘승부’를 거는 게 나을 것이다. 지난해보다 30% 남짓 늘어나 8천 평쯤 되는 벼농사 면적(모두가 빌린 논이다)이 버겁게 느껴지기에 해본 생각이다. <작은책>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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