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6. 08:22ㆍ누리에 말걸기/<작은책>
느닷없이 비가 내리는 바람에 동네 잔치판이 깨지고 말았다. <황금들녘 나들이>라고 해서 가을걷이 잔치를 벌이려던 참이었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녘을 거닐면서 메뚜기 잡고, 잘 익은 홍시감 따고, 토실토실한 알밤도 줍고, 막걸리 한 사발로 흥을 돋워 풍물가락에 어깨춤을 들썩여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빗발이 내리치고 들판은 추적거리고, 날씨는 쌀쌀하니 될 일이 아니다. 시작을 두 어 시간 앞두고 SNS에다가 ‘행사취소’를 알리는 마음이 어찌나 아쉽던지.
세 번째 동네 잔치판은 이렇게 날아갔다. 두레의 전통이 살아 있던 옛 농촌사회에서 노동과 잔치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공동체 전통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언감생심, 아무리 애를 써도 될똥말똥이다. 그래도 우리 벼농사모임은 이미 두 차례 동네잔치를 치른 바 있다. 비록 ‘일 따로 잔치 따로’였지만, 그 때가 한창 농사철이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기특해지는 바가 있다.
첫 번째 잔치는 이른바 ‘양력 백중놀이’. 백중놀이는 본디 세 벌 김매기가 끝나는 즈음인 음력 7월15일에 푸짐한 술과 음식으로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전래잔치다. 그러나 올해는 논풀이 적게 올라 온데다 우렁이가 제몫을 다 해줘 김매기가 일찌감치 끝났다. 더욱이 백중이 되려면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는 탓에 편법을 쓴 셈이다.
행사 프로그램은 모임의 특성을 살려 ‘논배미 투어’를 중심으로 짰다. 모임 회원들이 짓는 논배미를 둘러보며 유기농 벼농사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 벼 생육상태도 직접 살펴봤다. 이어 자연식 꽁보리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고, 모깃불 피워놓은 마당의 뒤풀이로 하루를 마무리. 잔치판에는 모임 회원이 아닌 지역주민도 함께 해 이 동네를 살짝 들었다 놓았더랬다.
두 번째 잔치는 첫 번째의 ‘시즌 투’라 할 만하다. 워낙 호응이 좋았던 터라 ‘진짜’ 백중도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번에도 ‘논배미 투어’를 앞장세운 가운데 ‘왕우렁이 초무침’ 시식을 얹히고, 그 때까지의 벼농사 여정을 영상으로 돌아보는 시간도 마련했다.
이어 풍년농사 자축판으로 꾸미려던 세 번째 잔치는 궂은 날씨로 아쉽게 뜻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잔치판은 또 열릴 것이다. 시골살이의 즐거움과 참다운 생태 가치를 농사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그저 벼농사모임이다. 애초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있는 너 댓이 모여 농사기술과 정보를 나누고, 품앗이도 해보자는 것이었다. 게 중에는 나 같은 전업농도 있지만 ‘쌀 자급’을 목표로 몇 마지기를 부치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문이 퍼지면서, 당장 짓고 있지는 않더라도 유기농의 가치를 높이 사고, 언젠가는 손수 벼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이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게 올해 초였고, 지금은 ‘예비 농사꾼’이 훨씬 더 많다.
한겨울이었고, 농사철이 되려면 멀었으니 공부모임부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유기농 벼농사를 지어온 회원을 ‘사부’로 모시고 흙, 물, 씨 따위 밑바탕부터 배웠다. 나아가 한 해 벼농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영상자료를 통해 알아봤다. 그 모든 걸 처음 듣는 이들은 눈빛을 반짝였고,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윽고 4월말, 볍씨 담그기를 시작으로 농사철에 접어들었다. 염수선으로 튼실한 볍씨를 고르고, 열탕으로 소독해 찬물에 담그기까지 다들 처음 해보는 일이 신기하기만 하다. 파종기계로 촉이 튼 볍씨를 모판에 뿌려 차곡차곡 쌓는다. 사나흘 남짓 새싹과 뿌리가 자란 모판은 물못자리로 옮기게 된다. 푹푹 빠지는 논바닥에 줄지어 서서 모판을 나르고, 못자리 두둑 위에 가지런히 앉히는 일이 못자리 작업의 정점을 이룬다. 짧은 시간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벼농사모임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한다.
그 다음부터는 물이 마르거나 넘치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된다. 공동못자리인 만큼 농작업 또한 같이 한다. 모가 다 자라면 저마다 제 논으로 옮겨서 모내기를 하게 되는데, 그 다음부터는 농작업도 제각각이다. 공동작업 때는 새참이며, 뒤풀이 때 자연스레 잔치 분위기가 돌지만 제각각 일하면서부터는 어려워진다. 그러니 일부러 함께 할 수 있는 잔치판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듯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농사만큼이나 목을 매게 되었을까. 여기로 이사와 맨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무엇보다 생태라는 가치와 신념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 해지, 실질이 채워지지 않으면 탁상공론으로 굴러 떨어지게 마련이고 지속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가치와 신념체계를 뒷받침해줄 실질은 무엇일까.
사실 벼농사는 경작면적이 수 만평은 되어야 생업을 들먹일 수 있을 만큼 수익성이 낮다. 게다가 올 들어 관세화를 통해 쌀수입이 전면 개방되고, 밥쌀수입을 통해 그 여파가 확인되면서 국내쌀값은 폭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벼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줄을 이을 건 뻔한 노릇이고, 쌀 자급도는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그 자리를 수입쌀이 메우고 나면 국내쌀값은 더 떨어지고... 이 악순환의 끝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결국 벼농사가 거대 규모화-기계화를 좇아 수익에 목숨을 거는 상황이 펼쳐질 텐데 그것을 농업의 활로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코 사는 길이 아니라 모두가 죽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수익성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집착하는 대신 ‘노는 핑계’를 만들어내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은 농사짓는 즐거움이 진짜 활로가 될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득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기본적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건 틀림없다. 그 길은 적정한 경작규모를 갖추고, 서로 농기계와 노동력을 나눠 쓰며, 생태농사를 통해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내는 가운데서 찾을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 속에서 모두가 함께 누리고, 즐겁게 짓는 농사를 나는 꿈꾼다.
내일 모레부터는 가을걷이가 시작된다. 엊그제 내린 비는 가을잔치판을 엎어버리기도 했지만 수확작업에도 훼방을 놓았다. 논바닥이 질척거려서는 수확기(콤바인)가 운행에 애를 먹는 까닭이다. 하긴 유례없는 가을가뭄으로 온통 애를 태우던 마당이라 한편으론 고마운 비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황금빛들녘을 채우고 있는 벼이삭은 머잖아 나락이 되고, 햅쌀이 되어 밥상에 오를 거다. 풍작이 되레 농민을 고통으로 내모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농사짓는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나는 행복을 노래할 것이다. * 월간 <작은책>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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