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울안에 갇히다

2020. 12. 14. 17:47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아침나절부터 찬비가 제법, 그러나 수굿하게 내리고 있다. 윗녘에서는 눈이 제법 내린 모양인데, 겨울비 내리는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차피 발이 묶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은세계에 갇히는 편이 훨씬 운치 있게 마련이다.

 

겨울비가 아니라도 두문불출 해온지 열흘에 가깝다. 시원찮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어금니를 거지 반 잃었다. 바쁜 일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끝에 올 겨울은 넘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인공치아를 심는 1차 시술을 받았다. 처치는 별 탈 없이 끝났는데 수술부위가 덧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해 조신하고 있는 처지.

 

무엇보다 꽤 오랜 동안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알콜기운 때문에 염증이 생기면 재수술을 피할 수 없고 그 경우엔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니 감히 금주령을 어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내 음주이력에서 가장 긴 금욕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 싶다. 한편으로는 그게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고 또 그런 스스로가 대견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견디는 건 아니다. 향이 좀 더 진한 차 몇 잔과 몇 권의 책만으로 거뜬하다. 이따금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몇 곡 흥얼대기도 한다. 알콜의존 정도가 걱정했던 것보다 심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하겠다.

 

불행히도 때를 같이 해 코로나 사태가 급속히 확산돼 3차 유행국면에 접어들었다. 얼마 전까지 확진자 제로의 청정지역이던 완주군도 이번 국면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 대부분이 대기업 사업장 한 곳의 집단감염이긴 하지만 이 급작스런 사태반전에 지역사회가 꽁꽁 얼어붙은 모양새다. 저간에는 거리낌 없던 자리도 이제는 꺼리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현직 검찰총장과 국회입법을 둘러싼 사랑방 토론 제안에도 반응은 시큰둥.

 

내 처지도 그러려니와 바깥 또한 이리 뒤숭숭하니 좀체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 거다. 마실 일이 없으니 나갈 이유도 없어진 셈이지만. 어쨌거나 꼭 필요한 것, 이를 테면 기저질환 때문에 먹는 약을 타러 병원을 찾는 일 따위를 빼고는 집콕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거다.

 

얼마 전부터는 그 기저질환과 관련해 적신호가 울리는 바람에 운동이라는 걸 시작하게 됐다. 다들 그렇듯이 참 번거로운 일로 여겼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디 매인 것 없는 자유로운 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집 뒷산을 오르는 것만으로 그만인 것이었다. 오르막이 있어 반 시간 남짓의 산행으로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이른바 유산소운동으로 손색이 없다.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관련 수치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지금 막 그 운동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하지만 오늘은 비가 내려 바닥이 질척할 테니 건너뛰어 가련다. 치과의사가 내린 금주령처럼 지켜야 할 건 지겨야지만 운동이야 하루쯤 건너뛴다고 숨넘어갈 일 없으니. 아등바등 매달릴 일도 아니다. 엊그제는 산행 길에 마주친 푸릇푸릇한 솔가지며, 편백나무 가지, 고사리 잎대 따위와 칡넝쿨 걷어와 둥그렇게 말아 리스라는 물건을 엮어 방문에 매달았더니 집안이 환해진다.

 

코로나로 세상이 어수선하고, 시국은 온통 난리굿인데 참 태평하다고 타박할지 모르겠다. 사실 내 속이라고 그리 멀쩡하진 못하다. 때맞춰 생긴 이런저런 핑계를 내세울 뿐. , 이 글 끝내는 대로 간만에 동네 아낙들 그림 전시회(월요일의 아뜰리에)에나 가봐야겠다. 월간 <완두콩> 2020년 12월호 칼럼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독거노인'의 비애  (0) 2021.02.08
10쇄 찍었다는데  (0) 2021.01.11
만나자, 그리고 나누자  (0) 2020.11.10
풍진세상, 위로가 필요해  (0) 2020.10.12
백수에 돼지에  (0)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