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8. 18:11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코로나19 확산세를 감안해 벼농사두레 정례행사를 유보한다는 안타까운 말씀을 전합니다. 새해 초반에 열어오던 '벼두레 회원 엠티(연찬회)'도 현재의 여건에 비춰 시행이 어렵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아가 역시 신년초에 해마다 열어오던 <농한기강좌> 역시 특별한 사태반전이 없는 한 진행이 어렵게 됐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아쉽지만 시절이 이리 어수선하니 어쩌겠습니까. 깊이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산권 벼농사두레 단체톡방에 두 달 째 걸려 있는 ‘공지사항’ 주요내용이다. 그 사이 ‘특별한 사태반전’은 없었고, 되레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간다. 한때 1천명까지 치솟았던 하루 확진자수는 3~4백 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예방조치를 늦추면 상황이 나빠질 게 뻔하니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손님이 끊겨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파산 위기에 닥친 상인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은 안타깝기만 하다. 진작부터 예견된 상황일 텐데 이 지경에도 어찌 나랏돈을 풀지 않고 금고문 닫아걸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어쨌거나 답답한 시절이다. 집합금지 명령 뒤로는 바깥으로 나다닐 일이 거의 없었다. 출퇴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마실 정돈데 그마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굳이 나서자면 핑계야 없겠냐마는 꽁꽁 얼어붙은 사회심리에 비춰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장을 보거나 필요한 업무를 보는 것 말고는 밥 한 끼 또는 술 한 잔 나누는 일조차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하릴없이 울안에 틀어박혀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거나 책장을 넘기는 일이 다였다. 뒷산에 올라야지 그나마 바깥바람을 쏘일 수 있는 나날. 지난 한 달이 마치 반년이나 되는 듯 길게 느껴진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만으로 사건이 되는 상황. 그러고 보니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손에 꼽을 수 있겠다.
며칠 전에 방아를 찧었다. 방아 찧기야 쌀 전업농에게는 매양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좀 특별한 방아였다. 우리 벼농사두레 회원 가운데 전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농사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작은 논배미를 마련해 손수 벼농사를 짓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거둬들인 나락이 한 가마가 채 못 된다고 했다. 꼬마농부들이 땀 흘려 지은 그 천금 같은 나락이 아까웠던 원장은 내게 처리방안을 상의해왔다. 고심 끝에 우리 집 방아를 찧은 날 함께 찧기로 했다. 도정과정을 직접 살펴보는 것도 아이들에게 뜻 깊은 경험이 될 것이었다. 방앗간을 찾은 아이들은 쌀과 방아에 얽힌 설명을 들은 뒤 거창한 도정시설을 거쳐 하얗게 변신한 쌀 포대를 들고 돌아갔다.
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 겨울엔 눈이 자주 내려 두 번이나 진입로 눈을 치운 얘기, 그 와중에 모터펌프가 고장나는 바람에 물이 끊겨 불편을 겪은 얘기 따위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별것 아닌 일이 별난 것이 되는 참 이상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몇 차례 “이게 사는 거냐?”고 팔자타령을 했더랬는데 다들 심정들이 비슷한 모양이다. 엊그제는 갖은 식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는 홍어탕과 갑오징어-쭈꾸미 찜을 차려내는 거였다. ‘독거노인 위로연’이래나 뭐래나.
귀신은 팬데믹 빨리 안 데려가고 뭐하나 몰라. 월간 <완두콩> 2021년 1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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