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 22:55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올해 나락농사 막판에 생각지도 못했던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다.
그래봤자 질퍽한 논바닥 문제인데, 그게 쉽지가 않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고 했듯
나락이 저리 옹골차게 여물었는데 설마 내버리는 상황이 오진 않겠지...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다.
농사도 이젠 산업화됐다 하지만 그래도 벼농사인데...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불안한 게다.
콤바인... 내게는 없는 물건이고, 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임자들은 절대 미리 '확답'을 주지 않는다.
자기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여건을 만들려는 '자구책'일 수도 있지만
힘없는 '을', 소농에겐 피말리는 시간이다.
혹여 "논바닥이 저래서는 곤란헌디..." 퇴짜를 맞을까 싶어
질퍽한 구역은 한 포기라도 더 베어내는 것이다.
그러고도 황망한 꼴을 본다.
"말씀하신 대로 질척한 쪽 부분을 널찍하게 낫으로 베어놨는데 작업할 수 있죠?"
분명 "알았시유~" 했는데, 내내 연락이 없더니 엉뚱하게 재용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바퀴 빠질까봐서 형님네 논 작업 포기하고 기계 씻어서 반납했다네요"
말문이 막히지만 한 두 번이 아니니 '허허~' 하고 말았다.
입장바꿔 생각하면 그 양반도 빌린 기계인데, 질펀한 논에 들어갔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겠나.
그게 어제 일이었고, 오늘은 또 바뀐 여건에 맞춰 대책을 찾아가야 한다.
도중에 수확작업을 중단한 샘골 논은 다른 분에게 "작업할 수 있는지 살펴달라" 부탁해놨고,
죽산 논은 물이 들어차 질퍽거리는 구역을 낫으로 베어내는 수밖에 없다.
급히 영록 씨한테 구원요청을 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오늘 쉬는 날이란다.
염치 불구하고 "도와달라" 했더니만 그러마 한다.
둘이서 푹푹 빠지는 뻘밭에서 벼를 베고 있는데,
영록 씨 전화가 울리고 통화를 했는데, 얼마 뒤 트럭 한 대가 멎더니 낫을 든 40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영록 씨 친구다. 읍내에 사는데, 와달라고 부른 모양이다.
우리는 작업을 포기하고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 해서 다시 벼베기가 시작됐다.
콤바인으로 벨 수 있는 구역과 낫으로 베야만 하는 구역의 경계선을 따라 베어갔다.
셋이서 작업을 하니 확실히 다르다.
물론, 논바닥이 워낙 질어 장화신은 발이 푹푹 빠지니 운신이 어렵다.
그 사이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읍내 식당으로 향했고, 막걸리 몇 순배로 고단했던 기억을 털어냈다.
벼베기는 그걸로 끝이 났다.
두 사람에게는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 또한 마을 진입로에 널어 말린 나락을 쓸어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세 시 쯤, 나락담기를 시작했는데 완전히 어두워진 7시 쯤에야 끝났다.
지나던 어르신 한 분이 어느 배미 소출인지를 묻더니만
"엄청나게 많이 나왔구먼!" 탄성을 내지른다.
나의 셈으로도 그랬다.
대풍작인 것이다.
참... 냉온탕을 오가는 기분이랄까.
걱정과 기쁨이 자꾸만 엇깔려 속시끄럽게 한다
'걱정'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간문제인지 모르겠다.
설마 멀쩡한 나락을 그냥 내버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사실은 '엄살'이요, '어리광'이다.
뭇사람의 눈길을 끌자고 할 때 아주 쓸 만한 수법 아닌가?
그러니 너무 정색을 하고 볼 일이 아니다.
패이스북 포스트에 소스라친 어떤 반응을 보고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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