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31. 23:42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생각했던 대로라면 오늘은 벼 가을걷이를 마치는 날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했다.
이번에는 시간여유를 두고 콤바인 작업을 위한 밑(갓)돌리기를
그제부터 해오던 차였다. ...
엊저녁, 마지막 차례로 죽산 논으로 갔다.
그 동안 살펴본 대로 논바닥은 잘 말라 있다. 심지어 단단하기까지!
그런데 두 번 째 모서리를 베고 세번째 모서리로 가는데,
어렵쑈? 이건 아닌데... 논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니...
단지 물이 고여 있는 게 아니라 일대가 질퍽질퍽.
까무러칠 뻔 했다. 정신을 수습하고 질척한 부분을 둘러보니 전체 면적의 2/3나 돼 보인다. '멘붕' 상황...
하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수가 없다.
수확을 포기하거나 낫으로 벼를 베거나...
물론, 수확을 포기할 순 없다.
허나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니 집으로 돌아올 밖에...
그게 엊저녁 상황이었다.
오늘 아침, 멀리 널어놓은 멍석망을 집 가까운 곳으로 실어왔다.
다른 집은 수확은 물론 나락말리기 작업도 다 끝낸 상황이니
그 자리가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오후가 되어 집 가까이 있는 '반도배미'와 '모정배미' 논의 수확작업이 시작됐다.
마을 이장 님 콤바인으로 작업한다.
이 두 배미는 땅심이 좋아선지 수량이 엄청나다.
작업을 돕던 이장 부인이 우리집 농사가 제일 잘 됐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공치사 인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대충 셈을 해봐도 소출이 많기는 한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열흘 전 작업하다 멈춘 샘골 한 마지기와 문제의 죽산 네 마지기.
샘골은 작업중단 뒤 열흘이 지난 뒤라 꼬들꼬들 말라 있다.
그래도 콤바인 작업이 가능한 지를 판단하는 건 작업자의 고유한 권한이다.
최대한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하니 질척하다 싶은 곳은
낫으로 베어내야 한다. 아침 나절 한 시간 쯤 그 작업을 했던 터다.
아무튼 한 마지기야 어찌 되겠지만 죽산은 도대체 답이 없다.
5시가 좀 넘었지만 조바심이 일어 죽산 논으로 달려갔다.
물이 흥건히 고인 쪽부터 낫으로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닥이 푹푹 빠져 작업이 쉽지 않다.
게다가 6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저물었다.
어차피 오늘 끝낼 일은 아니었지만 착잡하고 울화통이 터진다.
에휴~
저녁놀을 등진 긴 그림자 만큼이나 한 숨도 기~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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