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9. 15:25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바야흐로 양파 심는 철이다.
적잖은 논은 벼를 베자마자 구멍 숭숭 뚫린 비닐을 뒤집어 쓰고 양파모를 기다린다.
이 고장에서는 논 이모작 작물로 양파가 대세다.
더욱이 올해는 양파값이 괜찮아선지 재배면적도 더 늘어난 듯 보인다.
우리 작목반도 진작 양파를 심기로 하고 모를 키워왔다.
우리는 논 이모작이 아니고 그냥 밭에 심는다.
일주일 전에 발을 갈고, 두덕까지 지어두었다.
오늘은 양파모를 심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주문 받은 쌀을 보내느라 지난 주말부터 포장작업을 해온 터였다.
오늘은 택배송장을 출력해 상자에 붙이고 밖에 쌓아둬야 한다.
지난번에 허둥댔던 기억 때문에 조바심이 날 수밖에.
그래도 포장을 마친 상태라 큰 부담은 없다.
옮겨심으려면 먼저 양파모종을 캐내야 한다.
보통은 포트에 씨를 뿌려 모종을 기르는데
그러면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체질은 비실비실하게 된단다.
하여 우리는 그냥 맨 땅에 씨를 뿌렸고,
역시나 작달막하니 영 볼 품이 없다.
그래도 체질이 강해 살아남는 힘도 세단다.
아무튼 모종밭에 쭈그리고 앉아 양파모를 캐내자니
얼마 못가 무릎이며 골반뼈가 시큰거린다.
그런데 여인네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
하긴... 남녀의 골격구조가 다르다고 했던가.
해서 옛부터 남정네는 논농사, 여인네는 밭농사
이렇게 일을 나눠서 했다지.
아무튼 모종을 모두 캐냈으니 이젠 옮겨심는 일만 남았다.
양파모를 옮겨심을 본밭은 고추농사를 지었던 바로 그 땅.
여인네들이 양파모를 옮겨심는 사이,
남정네는 3km 남짓 떨어진 논바닥에서 경운기를 끌고 왔다.
박 권사 네 경운기인데, 양파를 옮겨심은 뒤 물을 주기 위함이다.
탈탈탈탈~
이 놈의 경운기는 완전 굼벵이다.
3Km를 가는데 1시간 남짓 걸렸다. 사람 걸음보다도 느리다.
게다가 도중에 가파른 고갯길과 좁다란 벼랑길이 있어
서툰 운전자에겐 무척 위험하다.
아무튼 사고 없이 밭까지 경운기를 몰고 왔다.
경운기에 달린 양수기로 양파밭에 물을 준다.
근처 둠벙에 주입구(빨대)를 꽂아넣고 양수기를 작동하니 호스를 타고 물이 나온다.
여인네들이 양파모를 옮겨심는 동안 내게 맡겨진 임무는 바로 물주기다.
분사기 연결부위가 헐거운지 물이 새어나와 옷이 금새 젖었다.
4백여평 밭에 모종을 옮겨심고, 물을 주고 나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막판엔 쌀택배 조바심에 건성으로 물을 뿌렸다.
시간에 쫓겨 분사기 호스만 대충 사려놓고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오는 양파밭 가엔 팽개쳐 둔 경운기만 우두커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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