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적'
2013. 11. 9. 08:12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사 꿈만 같다.
물이 흥건하고 질퍽거려 콤바인이 도저히 들어설 수 없어보이던
죽산 논배미 얘기다.
오늘 오후, 콤바인 작업하기 힘든 곳의 나락을 모두 베었다. 낫질로....
베긴 베어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으니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억지로, 억지로 논에 다다른 게 오전 11시.
한 묶음 베어 놓고 둘러보면 한숨이,
또 한 묶음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그냥 새어나온다.
그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맞은 편 봉실산,
울긋불긋한 자태가 심사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어느 세월에 저 많은 놈들을 해치울 수 있으려나...
오후 1시쯤 되었나. 전화가 울린다. 주란 씨다.
“지금 그 쪽으로 가려는 참인데, 정확한 위치 좀 알려주세요!”
헐~ 빈말이 아니었구나.
아침 일찍 쌀 한 포대 전해주고 되돌아 올 때
“오늘 나락 비는 거 도와드릴까요?” 했을 땐 인사치레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참말로 오겠다는 거 아닌가.
좀 있다가는 정화 씨가, 그 다음엔 김 장로가 잇달아 도착했다.
아무리 한 작목반이라지만, 여인네들이 질퍽한 논바닥에서...
그래도 사람 손이란 무서운지라, 벼포기가 부쩍부쩍 줄어들더니
날이 저물기도 전에 일이 끝났다.
사흘이 걸릴지, 나흘이 걸릴지, 아니면 일주일이 걸릴지...
아득하기만 하던 그 일이 한나절 만에 끝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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