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4. 13:36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논바닥에 깔아놨던 볏짚을 묶어 나르고 오는 길이다. 우리가 쓸 건 아니고, 주란 씨네 누렁소가 먹을 여물이다. 소는 몇 마리 안 되지만 조사료 값이 꽤 든다고 한다. 흔히 ‘공룡알’로 불리는 곤포 사일리지(볏짚을 기계로 사려서 흰 비닐을 씌운 것) 값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주란 씨는 일찌감치 우리 볏짚을 점찍어두었더랬다. 게다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은 유기농이니 더없이 좋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주란 씨 얘기고, 나야 득 될 게 하나도 없다. 아니 할 말로 그 볏짚 팔아서 가욋돈을 손에 쥘 수도 있고, 하다못해 잘게 썰어 넣으면 훌륭한 유기질비료가 된다. 그러니 뻔히 밑지는 짓이다. 하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다. 함께 생태농사를 짓고 있는 ‘동지’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닥 개운치가 않다. 정초 아니던가. 이런 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질척한 논바닥에서 어쭙잖은 노동이라니 못마땅할 밖에. 이건 한참 겨울잠 자다가 끌려나온 곰 신세와 진배없다. 지금은 땅도 농사꾼도 쉬어가는 철, 농한기가 아니던가.
농한기, 요즘 세상하고는 참 안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 어릴 적,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농한기는 세상을 좀 먹는 ‘사회악’이었다. 빈둥대면서 허구한 날 벌이는 술판이나 노름판과 동의어였다. 농한기를 없애야 한다며 마을길 넓히기, 하수구 퍼내기, 공동빨래터 만들기, 쥐잡기 따위 ‘새마을 가꾸기’라는 이름 아래 온갖 소동을 피웠더랬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오늘에 이르러 농한기라는 말, 아니 농한기 자체가 시나브로 사라져버렸다.
시설채소 기르고, 가축 치느라 사시사철 쉴 틈이 없다. 이 둘을 하지 않는 이들도 겨울 한철은 가외소득을 올리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게 보통이다. 노는 게 싫어서가 아니다. 안 그러면 ‘먹고 살기’가 팍팍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농사꾼이 농한기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 겨울한철, 너끈히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농업소득이 많아서가 아니다. 아직 내 땅 한 뙈기도 없는, 경력 2년 짜리 얼치기 농사꾼이 벌면 얼마나 벌겠는가. 만물이 움직임을 멈추는 ‘추수동장(秋收冬藏)’의 자연이치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 자연주의자냐면 그도 아니다. 그럼 뭐냐.
‘물질적 풍요’만을 좇아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좀 덜 먹고, 덜 쓰더라도 한 번 뿐인 삶을 좀 더 뜻 깊게 살았으면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억누르는 금욕주의가 뜻 깊은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나누고, 함께 누리며 살자는 거다. 승자독식-무한경쟁을 용인하고 추구하는 대신 더불어 살아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생각. 사람만이 아니다. 기후변화, 핵위기에 부닥친 지구생태와 공생(共生)해야 인류의 삶도 지속가능하다.
농한기에서 비롯된 얘기가 꽤 거창해진 것 같다. 사실 내가 시설채소나 축산을 마다하고, 10년 가까이 채식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공생과 생태라는 가치와 잇닿아 있다. 그런데 발 딛고 선 현실이 이와 딴판이니 고달픈 것이다. 지난 연말,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불거진 ‘공공서비스 민영화’ 정책은 이 고달픈 현실의 음울한 전주곡이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있던 날, 서울까지 올라가 ‘아스팔트 농사’를 짓고 온 것도 이런 이유다. 그나마 농한기여서 망정이지, 농사철이었어도 다녀올 수 있었을까? 이래저래 농사꾼한테는 농한기가 ‘필수코스’가 아닐까 싶다. <완두콩>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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