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0. 11:5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바람은 한결 보드랍게 살갗을 스치고, 들녘에 돋아난 풀은 싱그러운 기운을 더한다. 겨우내 숨죽어 있던 여러해살이 화초들은 쭈뼛쭈뼛 새싹을 올린다. 물이 오른 매화는 머잖아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영하권을 맴도는 날씨에 아침나절은 잔뜩 웅크려 있다. 미세먼지로 한동안 창공이 뿌옇던 뒤끝이다. 그렇지. 꽃을 보기가 그리 쉬운가. 꽃샘추위도 없이 곧장 봄을 만난다는 건 욕심이겠지. 더욱이 모두에게 찬란한 봄이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는 환절기라는 ‘덫’도 있다. 하여 허리가 꺾였다는, 안타까운 부고가 잇따라 한 동안 ‘삶의 덧없음’을 되뇌기도 했다.
하긴 무상한 게 어디 인생뿐이던가. ‘식생’ 또한 다르지 않음을 새삼 절감한다. 달포 전 씨를 묻었던 토종고추를 두고 하는 얘기다. ‘별 탈이 없었으면’ 지금쯤 잎을 너 댓 장 매단 모종으로 자라 있을 ‘칠성초’와 ‘곡성초’가 끝내 떡잎도 못 올리고 스러진 것이다. 처음 겪는 뜻밖의 사태라 황망하기만 했다. 물을 너무 주어서 그랬다는 진단이 있었지만 확실치는 않다.
급한 마음에 진안의 한 자연농가에 청해 칠성초 씨앗을 구해왔지만 이번에는 눈도 틔지 못했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처음 칠성초 씨앗을 건네준 곡성의 벗에게 염치를 무릅쓰고 또 손을 벌렸다. 삼세번! 다시 눈을 틔워 운영 씨네 비닐하우스에 ‘모셔’두었는데, 아뿔싸 이번에도 신통치가 않다. 이 노릇을 어이 할꼬?
그래도 운영 씨네 비닐하우스 한쪽에선 우리 고추모가 자라고 있다. 모판에서 맨땅에 옮겨 심은 지 열흘 남짓 되었는데, 어림잡아 수 백 포기다. 웬 거냐고? 어느 육종연구소에서 개발한 신품종인데, 정화 씨가 우연히 씨앗을 구해 싹을 틔운 놈들이다. 고추모가 그나마 전멸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올해 토종고추 농사는 우리농업 현실을 빼닮았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요, 첩첩산중인 마당에 이제 쌀 수입개방 문제가 다시 발등에 떨어졌다. ‘의무수입물량’ 외에는 쌀 수입을 금지할 수 있는 국제협정이 올해(2014년)로 만료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정부의 태도다. 정부는 ‘현행유지’가 최선임을 인정하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 심지어 세계무역기구(WTO)에 확인해보지도 않고 “현행유지는 불가능하다”며 2015년 전면개방(관세화) 방침을 굳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사례에 비추어 협상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현행유지가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하긴 정부가 언제 농민들 처지에서 농업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 친농민 정책은 그만두고, 기초식량으로서 쌀의 가치를 알기는 할까?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한 때 100%에 이르던 쌀 자급률도 갈수록 떨어져 80% 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면개방(관세화)으로 쌀 수입이 급증하면 머잖아 국내 생산기반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수입쌀의 저가공세에 밀려 생산비도 못 건지는 쌀농사를 누가 지으려 하겠는가.
‘기업농’을 육성해 농업을 ‘정예화’한다는 게 정부의 대답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정예’가 되지 못해 농업에서 밀려날 그 많은 농민들은 어찌하란 얘긴가. 지난해보다 논을 50% 늘려 벼농사 채비를 하고 있는 이 ‘물색없는’ 농사꾼의 심정을 저들은 알까? 봄은 왔는데 참 춥기도 하구나. <완두콩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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