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4. 22:14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그제부터 급작스레 날씨가 추워졌다. 2월 초순, 아직 겨울의 복판이다. 들녘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설이 막 지났고, 어제가 입춘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도 바뀌는 법. 뉘라서 그 이치를 거스를 수 있을까. 사람 눈엔 보이지 않지만 자연은 다시 생명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터다. 복수초, 노루귀 따위 찬 기운 속에서도 망울을 터뜨리는 꽃들이 그 산증인 아니던가.
어디 봄꽃뿐이랴. 당장 들판에 나가 보라. 언 땅일망정 녹갈색 냉이를 만날 수 있을 거다. 또 있다. 지난 가을, 사람들 손에서 싹을 틔우고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뎌낸 양파, 마늘 같은 풋것들. 가지런히 줄지어 선 ‘농작물’이다.
오늘, 바깥밤실 양파 밭에 덧거름을 주었다. 애초 어제 하려던 걸 날씨가 너무 추워 하루 늦춘 것이다. 그래도 영하의 기온이라 솜바지에 두툼한 겉옷을 걸쳐야 했다. 퇴비포대를 몇 번 지어 날랐더니 어느새 땀이 베어나 털모자를 벗고 단추를 풀었다.
이 추위에 어인 덧거름인가 싶을 것이다. 하긴 그거 아니라도 양파농사 망칠 일은 없다. 거름기가 모자라면 알이 작아 ‘상품성’이 떨어지니 문제다. 그래서 흔히 질소 성분 화학비료를 듬뿍 뿌리는데, 그러면 두 손으로 감싸 쥘 만큼 큼지막한 양파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크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것, 맛이나 성분에서는 외려 좋지 않다는 건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렇다고 땅심 만으로는 너무 작으니 잘 숙성된 유기질 퇴비를 알맞게 넣기로 한 것이다.
생태농사모임 <온새미로> 회원 다섯이 함께 매달렸더니 일은 금세 끝났다. 역시 사람 손이 무섭다. 머잖아 땅이 녹으면 양파 둘레에 올라온 풀을 매주기로 했다.
고추농사는 진작에 시작됐다. 보름 전 쯤 전남 곡성에 찾아가서 토종씨앗을 구해왔다. 10여 년 전 귀농해 생태농사를 짓고 있는 오랜 벗한테서 ‘칠성초’ 여섯 자루를 받았고, 때마침 곡성읍에서 열린 토종씨앗 나눔행사에서 ‘곡성초’ 몇 자루를 얻었다. 옛것에 대한 향수, 이른바 ‘복고취향’ 때문은 아니다.
‘재래 유전자원 보존-보급’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국내 주요 종묘회사가 이미 초국적기업에 넘어간 형편이다. 씨앗 선택폭이 줄어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을 치러야 할 뿐 아니라 유전자조작농작물(GMO) 문제도 큰 걱정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재래종이 대안작물로 떠오르는 건 자연스런 흐름이라 하겠다. 더구나 맛과 향이 뛰어날뿐더러 병충에도 잘 견딘다면 마다할 까닭이 없다. 온난화에 따른 새로운 기후환경이 관건일 터인데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어찌 귀하다 않을 손가. 조심조심 눈을 틔운 뒤 열흘 전 모판에 씨를 묻었다. 별 탈이 없다면 조만간 떡잎을 올리고, 줄기를 벋어 모종으로 자랄 것이다. 몇 달 뒤에는 본밭에 옮겨 심게 된다. 그런데 지난번 고추농사 지은 땅에는 이미 양파가 자라고 있으니 고추 심을 밭 두 마지기(4백평)를 새로 얻었다.
문득 아쉬움이 밀린다. 농사력을 제대로 꿰고 있지 못한 반풍수에게 이 즈음은 그런 때인가 보다. 유유자적 겨르로운 시절이 끝나가니 아쉽기도 하려니와 슬며시 불안해지는 것이다. 어느새 농사철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렷다. <완두콩 20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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