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농사를 안 놓는 까닭

2016. 1. 11. 16:22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당최 어쩌자는 건가. 밥쌀 3만 톤을 추가로 수입하겠단다. 가뜩이나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 마당이다. 통계청 조사로도 산지 쌀값은 단 한 차례 반등도 없이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해서 농민들은 남아도는 쌀 16만 톤 추가 격리조치가 내려지길 목 빼고 기다려왔다. 그런데 추가된 건 시장격리가 아니라 밥쌀 수입이다. 죽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새해도 밝았으니 좀 밝고 희망찬 노래를 불러야 할 텐데 그렇지가 못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농업농촌을 둘러싼 여러 지표는 온통 어두컴컴한 빛깔이다.


쌀값은 이제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명목가격이 그렇다는 거고, 실질 구매력을 따져보면 정말로 껌값에도 못 미친다. 20년 전에는 쌀 한 가마 값으로 짜장면 67그릇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36그릇 밖에 못 산다고 한다. 실제로 도시가구 소득이 18% 늘어나는 동안 농가소득은 되레 12% 줄어들었다. 그나마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1/3 밖에 안 되고 2/3농업 외 소득이다.


사실이 그렇다. 안밤실 광수 씨는 올해 논농사 스물 닷 마지기에 밭농사 대 여섯 마지기를 지었다. ‘시장가격이 워낙 헐값이라 한 푼이라도 더 받아볼까 해서 읍내시장에 좌판을 깔았다. 하지만 그도 시원치 않아 지금은 집수리 노가다를 뛰고 있다. 밭농사만 열 마지기 쯤 짓는 분토골 주란 씨는 요즘 옆 동네 빵공장에 나가 포장작업을 한다. 농사철까지 남은 두 어 달 동안 수입을 벌충할 요량이다. 팍팍하기 그지없지만 농사로는 답이 안 나오니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이번 겨울엔 하늘마저 농사를 외면하고 있다. 40년 만의 최고기온이라고 한다. 비까지 자주 내려 겨울작물이 웃자라는 통에 피해가 크다는 소식이다. 물론 인간의 한없는 욕심이 불러온 기후변화 탓일 게다.


결국 한 해 농사 쌔빠지게지어봤자 평균 5백만 원도 못 번다는 거다. 그야말로 보탬이 안 되는 것이 농사의 현주소다.


그래도 농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멀쩡한 논밭을 그냥 놀릴 수 없기 때문이다. 평균 나이 66.5, 이 나라 늙은 농부들은 어떻게든 땅을 일궈 도시 사는 자식들한테 푸성귀 한 꾸러미라도 안겨줄 기대감으로 논밭에 나서는 것이다.


사오십 줄 청년농부라고 다를까. 축산이나 시설채소를 하는 농가야 사정이 다르지만 제철농사를 짓는 나 같은 농사꾼은 지금 농한기를 지나고 있다. 농사철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우리 벼농사모임은 벌써 몸을 풀기 시작했다. 새해가 밝자마자 공부모임에 들어간 것. 병신년, 원숭이가 재주를 부려 올해 벼농사 대박나리란 신년운세라도 받았느냐고? 그럴 리가 있나.


저마다 꺼내놓은 공부하고 싶은 주제에 그 속마음이 실려 있다. 건강한 먹거리, 신명나는 공동체 놀이문화, 쌀과 벼농사의 가치 따위가 주관심사였고 농기계(연장) 다루는 법, 친환경 농자재 제조법, 공동생산-유통체계 구축 정도가 뒤를 이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농사대박하고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무던한 건지, 미련한 건지.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도시민이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다. 식량주권, 환경생태계 보전, 국토균형발전 따위를 중요하게 꼽았다고 한다. 은퇴한 뒤 귀농귀촌할 뜻을 지닌 사람도 절반에 가깝다. 물질적 풍요가 삶의 최고가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번져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언짢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다.  월간 <완두콩> 2016년 1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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