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6. 19:07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엊그제가 입춘이었고, 설이 내일 모레다. 이 겨울의 끝자락. 농사꾼한테는 참으로 힘든 계절이었다. 한 동안 ‘이상고온’이 애를 먹이더니, 얼마 전에는 강추위와 큰 눈이 시설농지를 할퀴고 지나갔더랬다. 이기적 욕망이 불러들인 기후변화라는 부메랑. 이젠 하늘을 탓할 염치도 없게 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봄기운이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음이다.
하지만 절기가 그러할 뿐, 농심은 여적 엄동설한이다. 풀릴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첩첩산중이라 해야겠다. 농업정책이라는 게 도움이 안 되는 차원을 넘어 아예 농사의 숨통을 끊어놓고 말겠다는 기세다. 농식품부가 내놓은 것마다 하나같이 농민 죽으라는 ‘살농’정책이기에 하는 얘기다.
쌀이 넘쳐난다고 아우성이지만, 정작 쌀 자급률은 90%도 안 되는 실정이다. 억지로 들여오는 외국쌀 탓이다. 그런데 외국쌀을 처치할 궁리는 하지 않고 우리 쌀 생산량을 줄일 궁리, 다시 말해 자급률 떨어트릴 궁리부터 한다. 벼 재배면적을 3만ha 줄이겠다며, 지자체에 할당량을 내리먹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농업진흥지역 10만ha를 해제하겠다고 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요, 밑돌 빼서 윗돌 괴는 짓이다. 미봉책일 뿐 아니라 결국 농민도 죽고, 소비자도 죽는 길이다. 가뜩이나 기상이변이 심각한 상황에서 세계적 흉작사태가 빚어지면 어쩌려는지.
‘개방경제체제’를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 모두가 죽은 길을 내놓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뻔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설령 쌀 ‘과잉생산’이 문제라 하더라도 예컨대, 유기농 벼농사를 크게 늘리도록 이끄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소출은 줄더라도 질 좋은 쌀을 공급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당국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닐 게다. 문제는 철학이요, 정책기조다.
정치권력이 저 모양이니 경제권력도 따라서 날뛰는 거 아닌가. 미곡종합처리장(RPC)을 비롯해 도정설비가 가뜩이나 과잉인 지경인데 롯데재벌이 도정업 진출을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땅의 자본주의가 천박하다는 거야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이리 염치가 없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를 둘러 봐도 캄캄절벽. 한 가지 털어놓자면, 이 글을 쓸 때마다 “이번에는 좀 흐뭇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막상 떠오르는 일화는 벌써 몇 달 째 이 모양이니 못 할 짓이지 싶어진다. 나 홀로 넋두리가 아니라, 어쩌면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 나라 농사꾼들의 하소연이라 해두자.
더는 기댈 곳이 없으니 각자도생, 저마다 길을 찾아 종종거린다.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우리 벼농사모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번 공부모임에서는 애써 지은 유기농 먹거리를 어떻게 하면 다 내다팔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았다. 전국유통망, 지역유통망, 온라인장터, 읍내노점, 독립매장... 숱한 방안이 거론됐고, 게 중에 함께 해보기로 한 것도 있지만 아직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인가. 얼마 전 세상을 뜬 ‘우리시대의 큰 스승’ 신영복 선생과 곧장 이어지는 루쉰이 남긴 얘기가 사무치는 요즘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은 것이다. 땅 위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월간 <완두콩> 2016년 2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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