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0. 10:41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아침나절 두어 시간을 못자리에 머물렀다.
보통은 한 바퀴 둘러본 뒤
물을 대거나, 끊고 돌아오는데
오늘은 작정한 일이 있었다.
부직포 늦춰주기.
처음 모판을 앉히고 부직포를 씌울 때는
바람에 날리지 않게 가상을 흙더미로 촘촘히 눌러준다.
볏모가 자라면서 부직포는 조금씩 부풀어 오르다가
끝내는 팽팽해진다.
그래도 볏모는 계속 자라므로 부직포에 짓눌라는 모양이 된다.
언뜻 반투명한 공간에 빽빽히 갇힌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꼴이다.
해서 때가 되면 볏모가 짓눌리지 않고 거침없이 자라도록
가상을 눌러줬던 흙덩이를 덜어내면서
부직포를 헐겁게 늦춰주는 것이다.
참 시시하기 그지 없는 일 아닌가.
하긴 알고 보면 농작업이란 게 다 그렇다.
게중엔 현미를 '까부는' 일도 꼽을 수 있다.
현미를 찧어왔는데, 색채선별기 작동에 문제가 있어
검불, 깜부기 같은 '이물질'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을 때.
얼마 되지 않는 양이라 방앗간에 되가져가기도 그렇고,
해서 '수동선별'을 하기로 했는데...
이 때 필요한 게 '키'다.
헌데 키도 없거니와 있다고 한들 쓰는 법을 모르니 무용지물.
결국, 선풍기를 틀어 놓고 조금씩 내리붓어 이물질을 날려보내는
방법을 썼는데 손이 많이 가고, 영 거시기하다.
쭈그리고 앉아 한 시간 넘게 그 짓을 하고 있다가
지나는 이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좀 멋적은 점이 있다.
문제는 그 짓이 별 쓸모가 없다는 점.
밥을 앉히기 전에는 쌀을 씻게 마련인데
이 때 왠만한 건 걸러낼 수 있다.
이물질이 좀 많더라도 한 두 번 더 씻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굳이 까불어야 하는 건
농산물의 외관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은 탓이다.
그런데 크기에 따라 과일을 선별하거나 채소를 다듬어 내놓은 일은
나름 '부가가치'라도 생기는데
이런 시시한 일은 그저 '무상 서비스'일 뿐이다.
개다리소반 위에서 콩을 고르는 일도 그런 부류다.
아무튼 농사에는 이런 시시한 노동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트랙터 같은 큰 농기계를 조작하는 건 그럴싸한 노동인가?
글쎄, 시시하지 않을 진 모르지만 힘든 일은 기계가 대신할 뿐
그 또한 변속기나 여러 레버를 조작하는 단순반복 노동 아닌가?
따지고 보면 세상 일 거개가 시시한 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그러보니 시시한 얘기를 참 길게도 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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