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한해가 될거라는

2019. 4. 2. 13:38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마침내 농사철에 접어들었다. 천성이 게으르기도 하지만 밭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핑계로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농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우겨왔지만 어쩌랴 이젠 꼼짝없는 농사철인 것을.


지난 월요일, 석 달을 이어온 고산권벼농사두레 <농한기강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농한기가 끝났다는 얘기다. 그 마지막 강연은 퍼머컬처 텃밭디자인’(강사 임경수)이 장식했다. 밭농사는 요즘 씨앗을 붓고 온실에서 모종 기르는 단계다. 시절이 딱 들어맞아선지 퍼머컬처 강연에는 청중이 대거 몰려 귀를 쫑긋 세웠다.


특히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농장구획, 화석연료를 멀리하고 에너지를 아끼는 경작원리, 자연과 어우러지는 생태가치라는 이날 강연주제는 전체 강좌를 마무리하는 메시지로 안성맞춤이었다. 여기에다 그 결실로 거둬들이는 건강한 먹거리는 생태적 삶의 완성이라 하겠다. 나 또한 그런 텃밭농사를 꿈꾼다. 비록 집짓고 남은 코딱지만한 밭이지만 이미 그런 원리에 따라 땅을 고르고 자리를 나눠놓았다. 이제 씨앗을 묻고 모종을 옮겨 심을 차례다. 작물만이 아니고 사이사이에 꽃과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어느덧 벼농사도 코앞이다. 엊그제는 볍씨를 넣는 데 쓸 상토를 실어왔다. 동네 어귀에 62포를 가져다놓았다는 기별을 받고 1톤 트럭에 실었더니 짐칸이 차고 넘친다. 집으로 옮겨와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땀이 맺히고 온몸이 뻐근해온다. 겨우내 축 늘어져 있던 근육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니 그럴 만도 하겠지. 저도 모르게 씨나락 담그는 날짜를 헤아려본다.


그러고 보니 혼자가 아니다. 벼농사두레와 함께다. 때 맞춰 내일모레 정기 회원총회를 연다.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가늠해보는 자리다. 그러다보니 좀 의례적인 게 보통이다. 우리 또한 활동보고, 회계보고와 함께 실정에 맞지 않는 회칙조항 몇 개 손보는 정도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석점검을 했더니 8할 가까이 참석의사를 밝히는 거다. 선거를 치르거나 날카로운 쟁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뜻밖이다. 실제 출석으로 이어질 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더 큰 공간으로 급히 회의장을 옮기고 준비상황을 재검검하는 수선을 피워야 했다.


이런 장면은 또 있었다. 일 전에 신규경작 설명회라는 걸 열었다. 우리 벼농사두레와 더불어 새로 유기농 벼농사에 도전할 뜻을 지닌 이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미리 파악한 정보로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참석자가 예상됐지만 실제 참석자는 두 손이 모자랐다. 자리도 옹색하고, 준비한 기자재도 시답잖아서 진행에 애를 먹어야 했다. 나아가 손수 벼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참석자들의 의지를 모두 받아 안으려면 준비된 농지가 모자란 것도 문제다.


스스로 벌인 일이지만 알다가도 모를 때가 있다. 흔히 경제영역으로 간주되는 벼농사. 이 동네에서는 어느새 경제를 넘어 가치 있는 삶을 체현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도 그 하나다. 그것은 약동하는 봄기운만큼이나 강렬하게 느껴진다.


나로서는 이 넘치는 기운이 벼농사두레 활동의 결실이자 뜨거운 한 해를 예고하는 조짐이기를 바란다. ‘바깥의 힘에 기대는 대신 스스로 부조하고 자급, 자치하는 것이 좋은 길임을 예증하고 싶다. 그렇게 핀 꽃이 더 아름답지 않겠나.  월간 <완두콩> 2019년 4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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