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김매기... 그래도 백중놀이

2019. 7. 1. 16:13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애타게 기다리던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다운 비가 내린 건 거의 한 달 만이지 싶다.


사실 요즘이야 수리시설이 잘 갖춰져 하늘 보고 벼농사 짓는 논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관정이라도 파서 모터펌프로 물을 길러서 댄다. 그래도 심한 가뭄에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수원이 저수지인 곳이 특히 그렇다. 물이 흘러들지는 않고 퍼 쓰기만 하면 머잖아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방류를 통제하게 되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면 저수지에 딸린 논배미는 물이 모자랄 밖에.


올해 그 짝이 난 것이다. 샘골이 특히 심했다. 다랑이의 물이 모두 모이는 맨 아래 큰 배미마저 열흘 넘게 바닥을 드러내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찾아온 장맛비니 그 반가움이 오죽 하겠는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뒹굴기라도 하고 싶더니 이내 마음이 싸늘해진다. 이제서야, 다 늦게 내리는 비가 야속한 것이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한 달 남짓 물을 흠씬 대줘야 한다. 우렁이로 풀을 잡는 유기농은 특히나 그렇다. 물높이가 낮으면 우렁이가 풀을 뜯어먹지 못하는 탓이다.


그 중요한 한 달 내내 가물었으니 물 사정이 나쁜 논배미에는 피를 비롯한 온갖 잡풀이 수북하게 올라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을 흠씬 대주더라도 우렁이가 제구실을 하기 어렵다. 그러니 분통이 터질 밖에.


하지만 어쩌랴 이미 틀어져버린 것을. 우렁이가 안 되면 손으로라도 처치해야 한다. 김매기 말이다. 하긴 해마다 비슷하게 되풀이 되는 소동이긴 한다. 면적과 시간이 다를 뿐 김매기는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그리고 잡풀이 아무리 많이 올라와도 언젠가는 일이 끝나게 돼 있다.


김매기는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들뜨게 하는 면이 있다. 그 하나는 김매기 노동의 뜻밖의 매력’. 다리가 꼬이고, 허리에 무리가 가지만 일단 노동에 익숙해지면 맛볼 수 있는 몰입감 또는 삼매경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김매기만 끝내면 한해 벼농사도 사실상 끝이라는 기대감. ‘이것만 끝내놓으면...’하는 기대심리가 김매기 노동의 힘겨움을 이겨내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전통농경사회에서는 김매기가 끝난 뒤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백중놀이라는 걸진 잔치판을 벌였더랬다. 우리 고산권벼농사두레도 그 전통의 의미를 살려 해마다 잔치판을 벌여왔다.


어제는 그 양력백중놀이를 준비하는 기획회의가 열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에, 김치전 호박전 버섯전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잔치판을 그려나갔다. 열띤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먹고 놀자는 일인데 핏대 세울 것까지는 없다.


어쨌거나 올해 양력백중놀이의 얼개는 짜였다. 당신한테만 살짝 귀띔해드리자면 오는 714, 고산읍내에서 가까운 만경강변이다. 무얼 먹을지, 무얼 하고 놀지는 널리 동네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마련하기로 했다. 어떤 아이디어가 모여들지 자못 기대가 된다.


그리하여 한 달 가까이 목을 태우고 애를 태웠던 가뭄도, 다 늦게 찾아온 장맛비도 옛 이야기로 돌리고 알찬 결실을 내다보는 자리, 흥이 넘치고, 웃음꽃이 강줄기를 따라 울려 퍼지는 즐거운 잔치마당이 펼쳐지기를월간 <완두콩> 2019년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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