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1. 12:03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섭씨 33도.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지 싶다. 6월초인데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 땡볕 아래서 원산과 분토골 열 세 마지기 논둑 풀 베고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다음 주에 모내기를 하기로 했다. 그 전에 논배미를 만들어야 한다. 애벌갈이를 해 둔 논배미, 논둑을 정비하고 물을 잡아야 한다. 모내기 사나흘 전에는 써레질을 마쳐야 작업이 원활하다. 진작부터 했어야 할 일인데 더운 날씨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이렇듯 폭염을 무릅쓰고 나선 것이다.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불어오는 건 더운 바람이다. 시원한 맥주 들이켜고 낮잠을 청하면 스르르 눈이 감겨 늘어지게 자기 딱 좋은 시간. 하지만 그럴 팔자가 못 된다. 아침나절, 논배미로 나서는데 “오늘이 원고마감”이라는 전화를 받았더랬다.
하여 달콤한 낮잠 대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예초기에 시달리던 팔뚝이 아직도 후덜덜 거려 자꾸만 오타가 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오후 늦게 회의가 잡혀 있어 그 전에 원고를 넘겨야 한다. 돼지농장 관련 소송 대책회의.
지난해 하반기 내내 이 <농촌별곡>을 돼지농장 재가동 저지 싸움 얘기로 채웠더랬다. 12월에 완주군이 돼지사육업 ‘불허가 처분’을 내리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한 동안 뜸하던 돼지농장 사태는 업체쪽이 올해 2월 불허가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내면서 다시 물위로 떠올랐다. 얼마 전 그 행정소송 첫 재판이 열려 법정공방이 본격화됐다.
그런데 ‘줄소송’이다. 업체는 4월과 5월 잇따라 형사-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고발은 주민 6명을 상대로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 재물손괴, 집시법 위반’ 등을 걸었다. 민사의 경우, ‘불법 민원제기와 불법 행정처분’으로 손해를 입었으니 이들 주민 6명과 완주군-완주군수가 각자 3억원을 배상하라는 얘기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순리’라는 게 있다. 순리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순리에 비춰 옳지 않으면 아쉽지만 미련을 버리고 욕심을 접는 게 사람다운 행동이다. 그런데 이 순리를 거슬러 ‘무리’하게 제 욕심을 채우려다 보면 탈이 나게 돼 있다.
‘조폭’이라 불리는 깡패들은 완력, 다시 말해 주먹의 힘으로 무리수를 둔다. 처음에는 협박으로, 협박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기어이 제 욕심을 채운다. 이에 견줘 업체쪽은 ‘법’에 호소했으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업체쪽의 대응은 어느 모로 보나 순리가 아니다. 인구밀집 지역에 초대형 돼지농장을 재가동함으로써 주민의 환경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 자체가 생태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순리)을 거스르는 짓이다. 법과 제도에 비춰보더라도 농장 재가동은 무리다. 완주군이 밝힌 세 가지 불허가사유가 그것이다. 즉, 시설이 낡아 사육시설 기준에 부적합하고, 1만 마리 사육 시 수질오염총량제 할당량을 초과하며, 가축사육 제한지역 안에 농장이 있고 시설미비로 악취와 환경오염 우려가 커 공익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체쪽이 내세운 불복 논리는 그야말로 허접하다. 저들이 호소한 ‘법’이란 다름 아닌 ‘돈’, 금력일 뿐이다. 규모와 영향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대형로펌을 사서, 눈 튀어나올 엄청난 손해배상을 청구함으로써 지레 기를 꺾어버리겠다는 수작이다. 하지만 꿈 깨시라,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월간 <완두콩> 2020년 6월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