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6. 12:43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이틀 내리 비가 내리다가 아침나절에야 멎었다. 이제는 굳이 ‘봄비’라 명토 박지 않더라도 계절은 이미 봄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울안 잔디마당을 둘러 피어난 개나리, 복사, 배, 명자... 꽃들이 한결 눈이 부시다. 벚나무는 간밤 내리친 빗발에 후두두둑 꽃잎 떨구어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마침 주말이라서, 동네사람들과 작당해 마신 낮술에 거나하게 취한 탓으로 이 아침 속이 무척 거북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3주간은 토요일마다 비가 제법 내려주는 바람에 ‘파전에 막걸리’ 따위 비를 핑계 삼아 술추렴을 이어왔던 터다. 어제는 어쩌다가 ‘빙충이’ 꼴. 그러니까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빙충맞게 읍내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들이 급조한 술자리 되시겠다. 딱히 키워드랄 것도 없고, 그저 짚이는 대로 세상살이 안주를 삼는. 탕으로 나온 홍어가 별로 삭지 않았네, 아니 이 정도면 제법 삭힌 거네 시답잖은 입방아를 찧으며.
나른하기도 하고, 어쩌면 한심해 보이기도 하는 이런 모양새가 벼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나 같은 농사꾼의 요즘 나날이다. 날은 진작에 풀려 눈부신 꽃 잔치가 한창이고, 물오른 수목들은 저마다 앞 다퉈 새순을 올리고 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길러내는 농부들로 바삐 돌아가는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벼농사는 아직이다. 이 고장에서는 앞으로 달포는 지나야 볍씨를 담그고 한해 농사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밭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주위를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낮술추렴이나 하는 이즈음이 나로서는 참 거시기한 시절인 셈이다. 지난 이태 동안은 코로나19 탓에 이런 애매한 처지가 가려진 채 남모르게 지날 수 있었던 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농사철이 코앞이니 미리 갖춰둘 일이 적지 않다. 못자리용 상토를 들여놓고, 일찌감치 종자원에 주문해 둔 찰벼볍씨도 받아놓았다. 토양시료라 하여 논바닥 흙을 파내 토양성분을 분석하도록 농업기술센터에 맡겨놓았다. 이런 소소한 작업이 쌓이면서 마침내 농사철이 열리는 것이다.
이제 농사꾼, 다시 말해 일손을 갖춰놓는 일이 남았다. 이제는 제법 알려졌다시피 우리는 고산권 벼농사두레로 모여 협동작업을 해오고 있다. 농사철이 다가왔으니 다시 대열을 가다듬고 갖출 것은 미리미리 갖춰둬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늘 정기총회를 열어왔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국면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건너뛰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 사이 방역체계도 웬만큼 자리를 잡았고, 대체로 대면행사를 진행하는 분위기라 우리 또한 정기총회를 열기로 했다. 당국의 방역지침을 잘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한 발 더 나아가 실외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정기총회가 다들 그렇듯이 지난 한 해 사업을 되짚어보고 올해 활동의 가닥을 잡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에는 특히 그 동안 두레회원이 크게 늘어나고 활동반경도 커진 만큼 회칙을 개정해 사업을 집행할 임원수를 늘릴 예정이다. 나아가 올 한해도 벼농사를 끈으로 행복한 시골살이를 일궈보자는 바람도 나눌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강요한 오랜 고립과 칩거가 우리 삶과 마음을 갉아왔고 얼마간은 더 지속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비대면 시대의 고통을 이겨내고 삶의 가치를 참되게 구현하는 길은 다름 아닌 그 사람 손에 달려 있음이다. 월간 <완두콩> 2021년 4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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