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나리고 새잎이 돋으면

2024. 4. 15. 16:05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봄인가 했더니 벌써 꽃잔치가 끝나가고 있다. 매화는 진작에 지어 손톱 만한 열매가 맺었고, 개나리를 지나 벚꽃과 배꽃 잎이 허공중에 꽃비로 흩날린다. 지난 며칠 화사한 빛으로 간드러지게 피어났던 복사꽃도 조금씩 제빛을 잃어간다. 봄날은 이렇듯 허망하게 흘러가는 겐가.

 

눈부신 꽃잎을 떨군 들녘은 이제 연두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꽃잎 무리가 솜사탕처럼, 뭉게구름처럼 점점이 박혀 있던 산자락도 차츰 푸른 기운이 짙어간다. 좀 서글프고 야속도 한 시절이 흐른다.

 

그도 잠시, 아련한 춘심을 추스르고 보면 이게 다 농사철이 되었다는 표식임을 깨닫는다. 농한기,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먼저 마음을 다잡고, 슬슬 몸도 풀어준다. 걱정이 앞서다가도 막상 농사에 접어든다 싶으면 맘이 설레게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그야말로 농사철이 코앞인데 여전히 근심만 한가득이고 일의 진행은 어수선하다. 뭐가 크게 달라져서가 아니다. 벼농사만 짓는 쌀전업농 처지 그대로고, 고산권벼농사두레의 일원으로 두렛일(협동작업)을 함께 하는 구조 또한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어인 까닭인지 농사 준비에 집중을 못하고 일이 꼬이기도 한다. 아직도 찰벼 볍씨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여느 해 같으면 종자원에서 보내준 볍씨 포대가 이미 창고에 놓여 있어야 할 참인데, 신청이 늦어 차례가 밀리고 말았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만 끝내 못 구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게다가 함께 농사를 지을 벼두레 경작회원도 여태 구성을 마치지 못한 상태다. 올해는 농사를 그만두거나 쉬어가는 이가 제법 되어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데 진척이 느린 탓이다. 새 집행부가 여러모로 애쓰고 있어 조만간 진용을 갖출 수야 있겠지만 조바심이 앞서는 걸 숨길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간이 농부의 처지를 헤라려 줄 리 만무하니 농사일정을 짜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러 의논 끝에 올해는 협동작업 일정을 며칠 당기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협동작업, 게 중에서도 인력이 집중되는 못자리 조성작업을 55(어린이날)에 맞추고 역산하여 나머지 일정을 잡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어린이날을 챙겨야 하는 회원들을 배려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강해 작업날짜를 51(노동절)로 앞당긴 것이다. 결국 올해는 424일 볍씨 담그기를 시작으로 27일은 볍씨를 파종하는 협동작업 일정이 마련됐다. 다행히 임대기계를 나눠 쓰는 다른 농가들과도 일정이 겹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벌써부터 마음과 머리가 바빠진다. 찰벼 볍씨를 어떻게 구할지, 볍씨 담글 때 쓸 열탕소독기와 발아기는 어찌 옮길지, 파종작업 대책과 상토문제, 못자리 조성작업 인력은 또 어떻게 모을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농사라는 건 때가 되면 어찌 되었든 꾸역꾸역 해내게 돼 있는 모양이다. 더욱이 생태농업의 가치에 공감하면서, 일과 놀이가 하나되는 노동의 경지를 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빚어낸 건강한 쌀을 거두는 기쁨을 나누는 농사도반들이 함께 하니 어려울 게 무엇이겠나. 이제껏 밀려드는 걱정과 조바심일랑 함께 헤쳐나가다 보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으리라.

 

어느새 벼두레가 마련한 인문학강좌(지구를 살리는 농사이야기, 황대권 작가)와 벼농사 설명회에 나가볼 시간이 되었다. 좀 더 많은 이가 벼두레와 더불어 짓는 유기농 벼농사 대열에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가득이다. 월간 <완두콩> 2024년 4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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