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2. 08:23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모내기가 시작됐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그 바쁜 와중에 틈을 내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농사가 반 농사요, 모내기가 끝나면 벼농사 8할은 마친 셈이 된다. 하여 벼농사두레 공동작업(두렛일)은 못자리 만들기와 모판 나르기가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두레의 아름다운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일이 가장 고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달포 전 조성한 물못자리에 앉힌 볏모는 그 사이 별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모내기는 다 자란 이 모들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배미에 옮겨 심는 공정이다. 그러자면 모를 잘 심을 수 있도록 ‘본답’을 꾸며야 하는데 이를 ‘논배미 만들기’라 한다. 그 과정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
먼저 우거진 풀을 베어내고 물을 잘 가둘 수 있도록 논둑을 손봐야 한다. 요즘은 ‘논둑 조성기’를 트랙터에 매달아 기계의 힘으로 해치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여러 사정 때문에 우리는 손작업으로 이 일을 해내야 했다. 예초기를 둘러매고 억센 논풀을 치고, 한 삽, 한 삽 흙을 떠 논둑을 다졌다. 그러고 나면 로터베이터(로터리)를 매단 트랙터가 논을 삶게 된다. 물을 대고 논바닥을 잘게 부숴 흙탕물을 일으킨 뒤 판단하게 고르는 일이다. 사나흘 동안 흙탕물이 가라앉고 끈적해지면 모를 낼 수 있는 알맞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올해는 이렇듯 논배미를 만드는 과정에서 물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다. 지난해 장마 통에 안밤실 여섯 배미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분노제) 둑이 무너진 탓이다. 그 바람에 물을 가두지 못했고, 복구공사에 들어간 상태지만 연말에나 완공된다는 소식에 시름이 컸다. 행정기관에 호소하여 임시변통으로 물막이를 하고 양수기를 설치했지만 역시나 물이 모자라 양수기 조작하랴 물꼬 단속하랴 오락가락 애를 태워야 했다. 어렵사리 써레질을 마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벼농사를 시작한 새내기 경작자들 또한 농작업이 여간 힘들지가 않았으리. 하나부터 열까지 선배 농부들의 도움말에 기댈 수밖에 없어 답답한 노릇이었을 테다. 게다가 처음 해보는 예초기 질에, 논둑 삽질, 물꼬 관리 따위 무척 낯선 작업이니 실수연발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뭘 모르니 그만큼 몸뚱이가 고생일 수밖에. 어쨌든 이들 또한 어렵사리 모내기 준비를 마쳤다.
이제 모내기 공정의 하이라이트인 모판 나르기. 바로 어제 일이다. 작업 부담이 큰 만큼 사정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모여 올해도 마흔을 헤아리는 벼두레 회원과 고산고 교사-학생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일손을 보탰다. 늘 하는 얘기지만 흥겨운 잔치판에, 너무 고마운 일이다.
작업내용은 간단하다. 못자리에서 모판을 떼어내 트럭 짐칸에 실어서 여러 논배미에 내려놓는 일이다. 간단한 작업도 수백, 수천 번 반복하다 보면 힘이 달리고 고단하게 된다. 늦은 오후가 되면 결국 체력이 바닥나고, 마지막으로 논바닥에 붙은 멍석망을 떼어내자면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한다. 그나마 날씨가 흐리고 간간이 가는 비까지 내려주어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늘 그렇듯 무리하지 않고 왁자지껄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틈틈이 새참도 챙기는 즐거운 노동이었다.
그리고 오늘 모내기다. 퇴약볕 아래 이앙기를 모는 운전자와 모판을 대주는 보조자 딱 두 사람이 진행하는 따분한 노동. 다시 논배미로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월간 <완두콩> 2024년 6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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