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리 만들기, 그 열흘의 기록

2012. 5. 6. 22:16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세월에 쫓기듯, 세상에 쫓기듯 무턱대고 덤벼든 벼농사였다. 

이따금 신기해진다. 어쩌면 이리 진도가 척척 나가는지...

어느새 못자리 일을 끝냈다. 씻나락을 골라서 소독한지 열흘만이다.

이것으로 벼농사 반은 한거란다.

 

때로는 무슨 장난 같기도 했고,

때로는 제조업 조립라인에서 단순반복노동을 치르는 낭패감도 들었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살갗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가운데서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는 무논일은 '고단한 농사일'의 참맛을 보여줬다.

그리고 끝났다.

이젠 아침나절, 잠깐 동안 물높이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다. 

한 달 쯤 지나 나락모가 한뼘쯤 자라나면 모내기.

자, 그 열흘의 파노라마를 한 번 감상해보실까.

 

4월25일, 소금물의 부력을 이용해 씻나락에서 쭉정이를 골라내는 선별작업과 열탕소독.  소금물은 달걀을 담그면 동전 크기로 내밀며 떠오를 만큼 염도를 조절. 소금물에 씻나락을 붓고, 삽으로 휘휘 젓고 나면 튼실한 볍씨는 가라앉고, 쭉정이는 물위로 떠오름. 쭉정이를 채로 걸러낸 뒤 튼실한 볍씨를 망자루에 담음.

위에 보이는 장치는 열탕 소독기. 관행농법의 경우 농약을 푼 물에 담가서 소독하는 게 보통.  그러나 우리는 보일러로 물을 데워 섭씨 60도에서 약 10분 동안 담가두는 열탕 방식. 기름보일러를 쓰는 게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60도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임.

소독을 마친 볍씨는 일주일 남짓 낮에는 물에 담그고, 밤에는 꺼내놓기를 거듭하면서 눈을 틔우게 됨.

 

5월2일, 눈이 튼 볍씨를 모판에 담는 작업을 함. 위에 보이는 일본제 기계가 그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함.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검은색 플라스틱모판은 4백여개의 포트(볍씨방)가 뚫려있음. 각 포트에 볍씨 3~4알을 집어넣는 것이 이 기계의 핵심기능. 모판을 계속 공급해주면 컨베이어벨트의 원리에 따라 이동시키며 상토를 까는 공정(상토를 계속 공급해줘야 함. 위에 보이는 포대 두 개가 바로 상토), 볍씨를 3~4알 넣는 공정, 그 위에 상토를 덮는 공정으로 이루어짐. 공정이 끝난 모판을 들어다 차량 짐칸에 차곡차곡 쌓으며 물을 흠씬 뿌려줌.

 

상토 쓸어담기

 

차량에 쌓은 모판에 물을 주고, 마르지 않도록 거적담요로 덮는 모습

 

5월4일, 모판을 못자리에 넣는 작업. 차량 짐칸에 쌓아둔 모판을 하나하나 날라서 보이는 것처럼 간격을 잘 맞춰 4열 종대로 깔아둠. 노끈을 띄워 줄을 잘 맞춰야 하고, 모판 위로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조짐조심.

 

모판 6백개를 모두 깔아놓은 상태. 기하학 무늬가 무슨 공산품 같은 느낌.

 

모판 위에는 하얀색 부치포를 덮어줌. 강한 햇볕을 차단하고 밤시간대 보온이 목적임.

 

모든 작업이 끝난 상태. 뙤약볕이 부직포에 반사돼 눈이 부시네. 저만치 보이는 어우산은 짙푸름을 더하고 있다. 마치 한여름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