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8. 10:21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5월4일, 모판을 못자리로 옮긴 뒤 매일 아침 그곳을 둘러본다.
함께 벼농사를 지을 김 장로, 운영 씨랑 월화수, 목금, 토일로 나눠 맡기로 했다.
내게는 토일이 배정됐다. 나야 어차피 매일 둘러볼 요량이었으니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오늘 아침도 밥술을 놓기가 무섭게 자전거에 올랐다.
주욱 둘러보니 별 탈은 없어 보인다.
물이 안 닿는 이랑도 없고, 물높이도 적당한 것 같다.
나락모가 얼마나 컸나 보려고 첫 이랑 부직포를 들어 올리다 멈칫.
흰 실낱 모양을 그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푸른빛이 보이니 논란 게지.
한 2센티쯤 돼 보이는 나락모가 꼿꼿이 줄을 지어 서있다.
대견하다. 그리고 예쁘다.
산부인과 분만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첫아이를 처음 마주하며 느꼈던
그 대견함과 사랑스러움이 이랬던가?
아무튼 그제 내놓은 물고랑이 제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제,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 아침에 보니 모정쪽 논바닥이 바짝 말라 있다.
그리되면 못자리 첫 이랑에는 물기가 스며들기 어렵겠다 싶어 운영씨에게 전화.
“모정쪽 못자리 둘레로 고랑을 내야 될 것 같네요. 제가 오후에 할게요”
마침 이날은 시제가 있어 지푼네로 가봐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늦어도 두 세 시에는 끝날 것이다.
“저도 집안에 일이 있어 어머니댁에 가봐야 하니, 다녀와서 제가 할게요”
생각보다 시제가 일찍 끝났다. 한 시가 조금 넘어 돌아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는 못자리로 직행.
모정쪽 논바닥은 아침보다 더 바짝 말라 있다.
일단 물이 들어오는 쪽 두둑을 터서 물꼬를 내니 못자리로 물이 들이친다.
열두발 쇠스랑을 빨리 놀려 못자리 가장자리에 골을 낸다.
한 4~5미터쯤 팠을까, 모정 쪽에서 차량엔진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운영씨네다. 사리 씨는 물론 아이들까지 다섯 식구가 카니발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난 뒤 혹시나 싶어 고랑을 내려고 찾아온 눈치다.
고랑을 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리 씨가 피식 웃는다.
“왜요, 농사 체질인거 같아서요?” 이번엔 소리를 내어 웃는다.
진창이 적당히 말라놓으니 푹 빠진 장홧발을 끄집어내기가 힘이 든다.
그 꼴을 보더니 또 한 소리다.
“맨발로 들어가면 나중에 씻는 게 고역이라...”
진창, 무논에 질겁하는 기질을 에둘러 얼버무린다.
“마저 하고 갈 테니 그만들 가보세요”
5월 초순, 한낮의 햇볕은 제법 따갑다.
반도 못 나가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골을 타는 와중에도 논물이 쇠스랑을 적셨으니 흐름은 큰 문제가 없겠지 싶다.
두둑을 터서 내놨던 물꼬를 다시 막는 것으로 작업은 모두 끝. 한 삼십분이나 걸렸을까.
Before <----- 물고랑 ------> After
열었던 부직포를 덮고 흙덩이로 다시 여몄다.
눈을 들어보니 저만치 어우산 자락에 푹 안긴 안동네가 평화롭다.
집으로 오는 길에 텃밭에 들러 몇 컷.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것들이 보기 좋다.
아욱... 어머니가 주신 씨앗인데 드문드문. 어머니가 심은 것도 다 이 모양이란다. 결국 씨가 부실했던 탓?
상추... 그제는 청치마, 적치마 한 삽씩 퍼서 사리씨에게. 조만간 솎아내서 옮겨 심어야 할듯.
쑥갓... 그런대로 보기 좋아.
열무... 지난 일요일 애엄마를 시켜 솎아냈는데 양이 꽤 됐던 모양이라. '열무비빔밥'을 생각했는데 물김치를 담았더군.
엇갈이배추... 한동안 더디 자라더니만 이제 성장세가 본궤도에 접어든 모양. 머잖아 솎아줘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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