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땅강아지

2012. 5. 14. 12:14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반가운 손님!

게다가 뜻밖에 찾아왔다면 참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자님도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 하시지 않았던가.

오늘 아침 마주친 손님이 그러했다.

그 주인공은 땅강아지.

모판을 덮은 부직포를 손보고 있자니 저만치서 후두둑.

비닐하우스에 빗발이 내리치는 소리다.

이윽고 한 낱, 두 낱 빗방울이 맨살에 닿는다.

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미리 물꼬를 터 놔야지.

물꼬를 막았던 흙덩이를 들어냈더니 뭔가 꼬물거리다.

햇빛에 놀란 듯 황급히 구멍을 찾아 흙 속으로 사라진다.

땅강아지다.

다시 몰꼬 자리 흙을 떠내자 다른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역시 서둘러 땅 속으로 기어든다.

 

 

'반가운 손님'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거꾸로 아닌가.

애초 이 논의 주인은 이 녁석들이고, 농사꾼이야 말로 손님인 셈이다.

그것도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어느날 불쑥 쳐들어와 보금자리를 거덜내고 평화를 깨놓은 불청객.

아무튼 녀석에게는 몹시 안 된 일이지만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땅강아지. 이번에도 족보부터 캐볼작시면 이렇다.

생물학적 분류: 절지동물문 > 곤충강 > 메뚜기목 > 땅강아지과

분포지: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런데 여기에 덧붙는 산란시기, 서식장소 같은 학술적 설명보다는

'곤충계의 두더지'라는 별명이 그 특성을 잘 드러낼 듯하다.

아울러 녀석들에 얽힌 추억이 훨씬 '리얼리티'를 살려주리라.

추억이야 뭐 별거 있겠나. 

장난감이라면 뭣이든 자연에서 취하던 시골 아이의 놀잇감의 하나로 등장하는 게지.

요녀석 또한 풍뎅이나 잠자리 같은 다른 곤충들처럼

극악무도한 새디즘의 희생양으로 처참한 최후를 맞는 게 보통이었다. 

그 별명만큼이나 가재의 집게다리를 연상케 하는 앞다리의 힘이 제법이다.

두 다리를 오므렸다가 바깥쪽으로 밀치는 방식으로 흙을 헤친다. 

수영 가운데 평형의 팔동작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그래서 엄지와 검지로 그 두 다리를 감싸쥐면 밖으로 밀어내려 애쓰는데

그 힘이 제법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한 동안 '가지고 놀다가' 심드렁해지면

아이들은 모가지를 홱 비틀어 숨통을 끊어놓기 일쑤다.

아무튼 추억은 추억이고...

 

이 녀석이 반갑기 그지없는 이유는 또 있다.

한 때는 동물성과 식물성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먹성 때문에

농작물에 피해를 본 농사꾼들의 원성의 대상이었지만,

환경오염에 민감한 곤충이라 농약이나 화학비료 기운이 스민 논밭에선 자취를 감춘단다.

그래서 이제는 보기가 쉽지 않게 됐다는 슬픈 곤충.

다른 곳도 아닌 나락모를 기르는 논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으니,

잡것에 더럽혀지지 않은 아주 깨끗한 땅임을 말없이 증언하는  것이렸다.

 

                             *                *                * 

 

                                     <부직포 손질>

 

 하루가 다르게 나락모가 쑥쑥 커간다.

모판을 못자리에 옮긴 게 지난 5월4일.

이제 열흘이 흘렀으니 족히 6~7센티는 돼 보인다.

문제는 나락모 키가 더 자라면 부직포에 닿아 줄기가 내리 눌리는 모양새가 된다는 것. 

그렇다고 부직포를 완전히 걷어내기는  아직 이르고...

동네 어르신 말씀으로는 20일 쯤에나 걷어낼 수 있단다.

하여, 그 전까지는 나락모가 자라면서 부직포를 지그시 들어올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거다.

 

Before <---------      흙덩이 들어내기       --------> After

 

작업내용은 그래서 부직포를 눌러놓은 흙덩이를 몇 곳만 남기고 치워주는 것.

그리되면 나락모가 부직포를 들어올리는 데 아무래도 힘이 덜 들지 싶은 거다.

실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고

선배 농사꾼한테서 귀동냥한 내용이다.

아무튼 귀동냥 한 대로 흙덩이를 대거 들어내긴 했는데, 생각처럼 나락모가 힘을 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