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4. 14:55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오늘도 걷는다마는..." 그 노래가 떠오른다. 논바닥 말리는 일을 생각하다보면.
농사라는 게 본시 '요행'이 없는 법인가 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기대는 매번 여지없이 무너져왔다. 그러면서도 좀체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은 고쳐지지 않는다. 기본적인 배수체계를 갖춰놓고 기다리면 마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샘골 아랫논 둘레를 도는 도랑을 정비해놓고 물이 마르기를 기다렸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짓는 논이 아랫쪽에 자리잡고 있으니 샘골에 있는 모든 논물이 흘러들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좀더 정확히 이해했어야 하는데, 그 물도 언제가는 끊기겠지 안이하게 생각했던 결과다.
추석연휴를 보내고 나가본 논에는 예전에 흥건히 고여있는 바닥이 그대로다. 가만히 살펴보니 도랑의 한 곳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고 있었다. 구멍도 작지가 않다. 그러니 요 몇 일 사이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들었겠나. 그런 논 꼬라지를 보면 가뜩이나 답답한 마음이 더욱 심란해진다. 큰 아이 학교일은 되레 잔뜩 꼬이고 말았다. '타락한 교육 현실'을 탓해야 하나...
아무튼 수확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물이 괸 논에는 특별한 처방이 절실했다. 특별한 처방이래봤자, 고인 물이 빠져나갈 물곬을 내는 것말고 다른 수가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지난 2일 오후, 다음날인 3일은 아침부터 물곬작업에 나섰다. 이른바 '도구치기'. 물이 들어오는 물꼬와 맞은 편 논두렁의 물이 빠지는 물꼬 사이의 벼포기를 뽑아내 물곬을 내는 작업이다.
이날 샘골 아랫논에서만 세 군데 물곬을 냈다. 물꼬와 물꼬를 잇는 물곬 두 개. 그 길이는 각각 10~15미터 남짓이니 꽤 긴 편이라 할 수 있다. 물곬을 내고 나니 거기에 괴어드는 수량이 엄청나다.
이제 샘골의 마르지 않은 모든 논의 물꼬는 물곬로 이어지게 됐다. 나머지 하나는 물이 괸 쪽을 도랑과 연결하는 물곬로 그 길이 또한 10미터에 가까웠다. 그런데 논바닥이 평평한 탓인지 물흐름이 시원치가 않다. 이것만으로 바닥이 마를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샘골 가운데 논이다. 두 배미에 내놓은 세 갈래 물곬이 제구실을 해서 조금씩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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