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3. 03:31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한동안 겉돌던 '행복한 농장' 공부모임이 활기를 되찾았다. 오늘, 초저비용으로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는 방법을 공부했다. 이른바 '자닮농법', 자연을닮은사람들이 펴낸 <친환경 유기농업>을 교재로.
<몬산토-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공부한 지 두어 달 만인 것 같다. 이미 <친환경 유기농업>을 세미나 교재로 정하고 액면가 3만5천원이나 하는 비싼 책을 읽어본 상태다. 하지만 천연액비, 천연농약을 초저비용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굳이 세미나까지 해야 할 까닭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 탓인지 정기모임(월1회)이 열려도 눈 앞의 관심사를 얘기하느라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그러던 중 야심차게 올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는 주란 씨가 실마리를 풀었다. (생태)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두 분을 '행복한 농장' 새 회원으로 영입해 함께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그게 2주 전 쯤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지난해 농사경험과 올해 계획을 서로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주란 씨는 진작부터 고추농사를 함께 짓자고 제안해왔고, 거듭 이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올해 벼농사 경작면적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터라 많은 게 불투명하다. 작부계획도 그렇고, 농기계도 그렇다. 나아가 고추농사에 노동력을 얼마나 할해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그러니 "최대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어정쩡한 대답을 할 수밖에. 주란 씨는 저으기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이상의 선명한 답을 내놓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농사철이 되기 전에 읽을 예정인 책 세권-연 재배, 벼 유기재배, 채소 자연재배-과 더불어 얼마전 읽은 <생태주의자 예수>를 소개했다. 나를 뺀 회원들은 대부분 크리스천이다. 자연히 경칭도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다. 여기 내려오기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분위기라 처음엔 좀 뻘쭘했던 게 사실. 하지만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존중해야지. 거꾸로 나의 세계관도 충분히 존중 받고 있으니 그걸로 '퉁치면' 되는 거다.
아무튼, 이태 전 <생태적 경제기적>을 흥미롭게 읽은 바 있다. 지은이 프란츠 알트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생태철학자다. <생태주의자 예수>는 이 책에 앞서 번역출간됐고,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이번 농번기에 드디어 내 손에 잡히게 된 것이었다. 성서의 맥락에서 생태문제를 두루 살폈는데, 그 내용이 괜찮아 생태문제에 관심이 있는 크리스천에게 권할 만 했던 것이다.
얘기를 듣고 난 주란 씨가 냉큼 다음 공부모임 교재로 삼잔다. 하지만 "<친환경 유기농업>을 두 번 정도는 다루고 넘어가자"는 운영 씨의 강력한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열린 오늘 공부모임에서 운영 씨는 잘 준비된 발제를 했다. '자닮농법'의 원리와 실제를 요령있게 설명했다. 이어 올해 고추농사를 위한 준비, 유기농 벼농사를 위한 논 확보, 비닐멀칭과 생분해성 비닐 수급 등을 놓고 의견을 주고 받았다. 다음 모임에서는 <생태주의자 예수>를 교재로 공부하기로 했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 어렵게 두 권을 구해 나눠줬다. 그런데 발제자는 비신자인 내가 제격이란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혹 성령(?)의 감화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나... 순서로 봐서도 얼추 내 차례가 맞는 듯 하여 그러자 했다.
여담으로 멧돼지 퇴치방안, 새들에게 콩류 씨앗을 빼앗기지 않는 법 따위를 얘기하고 있는데 사리 씨가 가래떡을 한 상자 들고 온다. 맛깔스런 저녁을 대접 받은 데다 떡까지 안겨주니 황송하다. 이 가래떡으로 말할 거 같으면, 달포 전 우리쌀 방아찧을 때 부산물로 나온 싸래기로 만든 거다. 천 마리 넘게 방사하는 운영 씨네 닭모이로 쓰라고 건네준 것이었는데, 그러기엔 아깝다며 떡을 뺀 것이다. 맛이 꽤 좋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떡봉지를 든 사람들이 어둠 속으로 걸어나와 저마다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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