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삽질

2013. 2. 18. 23:21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일주일 만에 또 모였다. '친환경 고추 공동작목반' 쯤으로 부를 만한 사람들. 

 

원칙대로 하자면 작목반원 모두가 매일 이곳 비닐하우스에 나와야 한다. 고추모가 자라는 비닐터널 속 온도를 맞춰주고, 미지근한 물도 줘야 한다. 밤 시간에는 보온을 위해 전기열선을 가동하고, 비닐-담요-비닐 차례로 덮어준다. 해가 나서 공기가 더워지면 담요를 걷어내어 햇볕을 쬐게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거듭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일은 집이 가깝고, 비닐하우스 임자인 죄로 운영 씨 네가  도맡아 하고 있다. 매일 챙겨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 그렇지 일 자체는 그리 힘 들거나 손이 많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고추모 생육상황도 확인하고, 필요한 작업도 함께 하는 것.

 

 

 

오늘은 날씨가 한결 푹해서 당행이다. 일주일 만에 마주한 고추모는 키와 떡잎이 한결 자라나 있다. 고추모가 자라는 만큼이나 잡풀도 드문드문 올라와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자들은 풀을 매고, 남자들은 삽질을 시작한다. 지난번에 이미 얘기된 대로다. 삽질은 고추모를 한 번 옮겨심을 너비 1.5미터 남짓의 이랑을 짓는 초벌 작업이다. 먼저 양옆을 파서 고랑 자리를 만든다. 그 다음으로 이랑 자리의 땅을 뒤엎어 흙이 보슬보슬 마르도록 해놓는다.

 

지난 가을 수확작업 뒤 사실상 첫 일다운 일을 하는 셈이다. 서른 번 남짓 삽을 놀렸을까, 벌써부터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걸 닦아낸 옷소매가 흥건하게 젖는다. 이랑은 길이가 30미터 남짓, 고랑을 자리를 내는데 30분쯤 걸렸다. 사실 해오던 대로라면 관리기로 로터리(흙을 곱게 바수는 작업)를 치고, 날개를 세워 골을 파면 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첫 작업이기도 하고, 일단을 흙을 더 말릴 필요가 있어서 부러 삽질을 택한 것이다.

 

운영 씨와 내가 삽질을 하고 있는 사이, 여자들은 풀매기를 마치고 수북한 잡초덤불을 끌어모은다. 운영 씨네 염소한테 먹일 건초사료다. 그 때 쯤, 김 장로가 딸기 한 상자를 들고 비닐하우스로 들어선다. 삽질도 끝나고, 덤불도 대충 쓸어담았으니 딸기 먹으며 쉬어 가잔다. 사실, 오늘 작업은 이걸로 끝이다. 열어 두었던 비닐터널, 비닐-담요-비닐 차례로 다시 덮는다. 다음주에 관리기 빌려다가 로터리 치면 그 다음주에 고추모를 옮겨 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