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고추모를 붓다

2013. 1. 28. 21:04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오늘 고추모를 부었다. 고추씨를 뿌렸다는 얘긴데, 모종을 길러내려 씨뿌릴 땐 '모를 붓는다'고 한다. 하긴 고추농사엔 직파법이 없으니 씨를 '뿌릴' 일은 없는 셈이다. 그건 그렇고...

 

바깥 기온은 영하로 꽁꽁 얼어있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그새 땅이 녹아 질척거린다. 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고추모판 들여놓을 비닐터널 바닥을 고르고 있다. 고추농사를 함께 짓기로 정 목사님은 오늘 처음 뵙는데, 귀농한 지 9년 됐단다. 헌데 흙이 질고 엉겨붙어 생각만큼 판판해지지 않는다. 그 사이 촉 틔운 고추씨앗 봉지를 든 운영 씨가 들어선다.

 

"젊어선 푸른 주머니에 은돈이 열 냥, 늙어선 빨간 주머니에 금돈이 열 냥인 게 뭐게?"

요즘도 '수수께끼'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지 모르겠다만, 이게 우리 어릴 적만 해도 나라를 대표하는 수수께끼였다. 물론 씨앗으로 쓸 수 있는 건 금돈이다. 헌데 운영 씨가 가져온 고추씨는 그 빛깔이 붉으스름한 것과 파르스름한 것 두 가지다. 하나는 매운 품종, 또 하나는 덜 매운 품종인데 그걸 구분하려 염색을 해 판다고 한다. 

 

 

 

이 씨앗을 모판에 부어 비닐터널에 앉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해치워야 할 일이다. 매운 품종은 12판, 덜 매운 품종은 9판 붓기로 했다. 우선, 짧은 변이 30Cm 남짓한 길쭉한 플라스틱 모판에 상토(床土-모종을 기르기 위해 가공한 흙)를 수북이 깐다. 여기에다 씨앗을 붓는 것이다. 일단 씨앗을 모판 수에 맞춰 각각 12 무더기, 9 무더기 씩 똑같이 나눈다. 그냥 뿌리면 고루 뿌려지지 않으므로 상토와 섞어 뿌린다.

 

씨앗을 부은 모판은 하나씩 옮겨다가 비닐터널 안에 가지런히 앉힌다. 밑의 틈새가 벌어지지 않도록 자리를 잘 잡아줘야 한다. 한 시간이나 작업했을까, 비닐터널이 가지런히 앉힌 모판으로 들어찼다. 물뿌리개로 흠씬 물을 준 뒤 신문지로 모판을 덮은 다음 비닐을 씌운다. 이것으로 모붓기 작업은 끝. 날마다 물을 주고, 밤으로는 전열선을 이용해 보온하면서 관리를 해나가면 된다. 집이 가까운 운영 씨네가 도맡아 그 수고를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