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되었다. 졸지에...

2013. 3. 20. 17:00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이건 뭐,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팔자에 없는 "회장님!", 그 닭살 돋는 호칭을 듣게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둘째가 다니는 삼우초등학교 학부모회장!

 

그러니까 어제 저녁, 교육설명회를 겸한 학부모총회가 열렸다. 교육설명회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주로 새내기 학부모를 위해 학교에서 마련하는 연례행사다. 학부모총회 또한 비슷한 성격이긴 하지만 이번엔 다른 목적도 있었다. 학교운영위 학부모위원과 학부모회장을 뽑는 일이 바로 그것. 임기 2년인 학교 학부모위원은 아직 1년이 남았지만 전임자가 개인사정으로 사퇴하는 바람에 빈 자리를 메워야 했고, 학부모회장은 임기(1년)가 끝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두 가지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게 된 것이다. 두 자리 다 학부모총회에서 선출토록 되어 있다. 그런데 두 자리를 한 사람이 겸직하는 게 학부모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학교운영위에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의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는 또한 교육청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자면 운영위원 입후보 마감일(지난 3월 12일) 이전에 후보를 '조율'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전임 집행부를 중심으로 적임자를 찾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경과는 물론이고 선출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내게 운영위원 입후보 마감을 하루 앞두고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왜 '홍두깨'고 '날벼락'인지는 이 정도로 해두자. 저간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이제 와서 그걸 밝혀 뭐하겠는가. 아무튼 다른 누군가가 후보로 등록할 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를 안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지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마감시간 10분을 앞두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의 심정으로 행정실에서 등록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어제 열린 학부모총회에서는 규정에 따라 '운영위원 무투표 당선'이 공표됐다. 심지어 '수락연설'까지 시키다니... 이거 너무 모질지 아니한가? 이어진 학부모회장 선거에서도  끝내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전 서울 강남의 유명한 입시학원이 낸 광고가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다. "벌써 흔들리지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친구와 우정에 한눈 팔지 말고 대학입시나 열심히 준비하라고 부추기던 그 벌거벗은 메시지 말이다. 반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괜찮은 '공익광고'도 있었다. 나는 라디오로만 들었는데, 혹 TV를 탔는지는 모르겠다. 그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시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나? 물론 부모에 해당한다고 자부한다. 그걸 확실히 실행에 옮겼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생각만큼은 그렇다. "따라서 저는 '학부모' 회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쉽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이미 엎지러진 물인 것을... 어차피 이리 된 것, 힘껏 부딪혀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