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 14:48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간밤 새벽 시간에 오수 일대를 휘저었다. 오수라 하면... ‘의견(義犬)의 고장’이라고 들어봤는지. 지금도 실려 있나 모르겠다. 내 초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오던 충성스런 개 이야기 말이다.
옛날에 어떤 사내가 낮잠에 들었는데 집에 불이 났다. 불길은 사납게 타오르는데 이 사내는 깊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옆을 지키고 있던 이 집 개가 컹컹 짖기도 하고, 옷을 끌어당겨도 봤지만 깨어날 줄을 모른다. 다급해진 개는 도랑물에 제 몸을 적셔서 불길 속을 나뒹굴고 또 나뒹굴어 불을 껐다. 한참 만에 잠에서 깨어난 사내는 시커멓게 타다만 집과 털이 그슬린 채 죽어 있는 애견을 발견한다. 사태의 전말을 알아차린 사내는 대성통곡, 후하게 장사를 치러준 뒤 ‘의견비’를 세워 애견의 공을 기렸대나 어쨌다나.
그 전설 속의 마을이 바로 오수다. 임실에서 남원 쪽으로 가다보면 나온다. 그 곳엔 실제로 의견비가 서 있다. 그런데 어찌 하여 나는 오밤중에 그 곳을 휘젓고 다녔던가. 갑자기 의견비가 사무치게 그리웠냐고?
어처구니가 없다. 일이 꼬여도 이리 꼬일 수 있는지. 그 시간에 오수를 헤매다닌 것은 의견비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기차역, 오수역이 있기 때문이다.
엊저녁 다 늦게 전화가 왔다. 마나님이다.
“미안한데, 12시40분 전주역 도착이야. 마중 부탁해!”
이런 경우 본능적으로 짜증이 밀린다. 그 오밤중까지 기다렸다가 1시간 남짓 차를 몰아야 하니 안 그렇겠나. 그것도 어디 한 두 번이라야 말이지. 걸핏하면 그 시간이다. 그 시간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말이다.
어차피 얘기가 나왔으니 ‘아내의 사정’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공무원노조 총파업(2004년)이 빌미가 되어 아내는 10년 가까이 해직자 신세다. 법정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는 바람에 지금으로선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만이 유일한 복직의 길로 남아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면 그 길이 열리리라 기대하는 눈치였는데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그래서 아내는 한동안 ‘곱절의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거야 뜻대로만 되는 일이 아니라 치고.
어느새 3년 전 일이 되었다.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시골에 내려가 살자!”고 어렵게 얘기를 꺼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그러자!”고 했다. 아내는 대신 두 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시골에 내려가더라도 자기는 절대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원직(사회복지 전문요원)에 복직하면 전주나 완주 쪽으로 자리를 옮겨 공무원으로 근무하겠다는 것이었다.
하기 싫다는 일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 또한 사는 방법이라 생각이 들어 나 또한 그러자고 했다. 해서 아내는 자신이 근무하던 부천, 공무원노조 경기본부가 있는 수원을 근거지로 노조활동을 이어갔다. 주중에는 서울 친정에 더부살이 하면서 출퇴근했고, 주말이 되면 이곳 완주로 내려왔다.
처음엔 승용차를 이용했지만 기름값도 부담 되고, 생태에도 좋을 게 없으니 얼마 안 돼 열차로 바꿨다. 일찍 전주역에 도착하면 전주시내버스 타고 집까지 올 수 있다. 그러나 심야시간에 도착하거나, 열차시간이 안 맞아 익산역에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승용차 끌고 ‘픽업’을 나가야 했던 것이다. 한 참 바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왕복 한 시간이 달가울 리 없으니 짜증이 난다. 어제도 그랬다. 새벽부터 고추밭에 비닐을 씌우고 내쳐 구이면 안덕마을에서 ‘고산향 교육공동체’ 학부모 대표자 워크숍을 하고 돌아온 길이니 무척 고단했던 것이다.
그래도 “택시비 아끼자”며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쩔 수가 없다.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늘 내가 지고 만다. 어제도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간에 툴툴거리며 전주역으로 나갔다. 차를 받쳐두고 기다리는데, 도착시간이 꽤 지나고 승객들이 다 빠져나갔는데도 나타나질 않는다. 혹시 연착되었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만 가라앉은 목소리다. 달리는 열차 안에 있는데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단다. 바로 전 역인 익산을 지났다는데... 혹시 졸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확인해본다고 하더니 다시 전화가 왔다. 전주 다음인 오수역에 도착했단다.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가관이로군. 난 집으로 돌아 갈테니 그 동네에서 자고 오든 말든 알아서 하셔!”
오밤중에 피곤한 사람 불러놓고는 자기는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다니. 차를 돌려 집으로 가다보니 그래도 화가 누그러진다. 차를 세우고 전화기를 꺼냈다.
“바로 그쪽으로 갈테니 오수역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완주-순천 고속도로를 탔다. 급한 마음에 가속패달에 힘이 들어가고 속도계는 오른쪽으로 거침없이 휘어진다. ‘눈깜짝 할 사이’에 50Km 거리의 오수에 다다랐다. 그런데 기름이 바닥나 있다. 경황이 없어 전주시내에서 채워 넣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앞으로 20Km 남짓 갈 수 있을 기름이 남았는데... 아뿔싸! 새벽 2시가 가까워오는 시간, 시골동네 주유소들이 문을 닫았다. 오수면 일대를 싸돌며 불빛이 조금 새어 나오는 주유소 두 곳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인기척이 없다. 이를 어쩐다. 편의점을 지키는 어르신에게 방법을 물었으나 남아 있는 기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짧아 쉽지가 않다.
결국, 국도를 타고 문을 연 주유소를 찾아가는 모험 대신, 좀 더 확실한 길을 찾았다. 고속도로를 타고 집과 반대방향인 남원 쪽으로 가다가 오수휴게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남원분기점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방법이었다. 초행길이라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다행이 고속도로에 잘 올라탔고 머잖아 오수휴게소 주유소가 보였다. 기름을 넣고 나니 팽팽하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배배 꼬였던 심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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