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2014. 1. 14. 23:33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이번 겨울이 그닥 화려하지못했던 건 시절이 어수선한 탓도 없지 않았다. 4~5년 전 앓았던 정치적 우울증이 재발했지 싶다. 박근혜 정권 1년이 되어갈 즈음 도진 증상이다. ‘말이 안통하네트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이리 생떼를 쓰는 정권은 처음이다. 논리도, 근거도 없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알라!”는 얘기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이 놈의 정권이 하다하다 반대파들을 화병이 나게 해서 제거하는 전략을 세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치적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화를 돋우는 현장과 상황에서 벗어나면 된다. 세상 돌아가는 꼴에 관심을 끄는 것, 이게 특효약이다. 나 스스로 효험을 본 요법이다. 시골로 내려와 살면서 공중파 TV, 종이신문도 끊고 살았다. 내 뜻과 상관없이 보고, 듣게 되는 상황을 없애버린 것이다. 꼭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선별해 얻었다. 그렇게 2년 남짓 보내니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선별한다고 해도 인터넷 공간인데 깔끔할 수가 있겠나. 삐져나오고, 묻어나오고, 가끔씩 곁눈질도 하게 되는 법이다. 더욱이 패이스북을 이용하면서는 뉴스피드라는 공간이 하나의 뉴스매체 구실을 한다. 다시 화를 돋우는 세상사와 링크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철도파업이 벌어졌고, 어느 날 아침 민주노총을 경찰이 침탈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인터넷 모니터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온종일 마음을 졸였다. 실로 몇 년 만이다. ‘토요 총파업지침을 내리는 버거운 민주노총을 보며 착잡하고, 가슴이 쓰렸다. 그저 오랜 세월 몸담았던 조직이어서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을 생각해서다.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수명을 다한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발악처럼 보인다. 철도, 에너지, 의료, 물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깨달은 대중은 스스로 떨쳐 일어섰다.

 

그러나 지난 두 차례의 거대한 촛불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졌던 까닭이 무엇이던가. 우리사회 최대의, 최후의 물리적실체, 민주노총이 정권퇴진을 내건 한판투쟁을 선언했으니 이젠 조직의 명운이 걸린 거다. 1996~97년 이후 실로 20여년 만에 대중의 지지가 솟구쳤는데도 힘없이 무너져 내리면 다시는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내 머릿수 하나라도 보태야지 싶었다. 전국집중 시청앞 집회가 열리던 그 추운 날, 나는 전주에서 떠나는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서울로 떠났다.

 

패이스북에도 올렸듯 그야말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이다. 언젠가 털어놨듯 물질적 풍요와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저 고요히 살러 시골로 내려왔다. 그것도 못하도록 가만 두지 않는 세상이라니!

 

 

한편으로는 스스로 쌓은 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전업 활동가로 반평생 업을 쌓았다. 그러고도 떠나오는 순간까지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를 써서 다시 업을 쌓지 않았던가. 이제 노동인권이라는 멍에를 쓰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하는 얘기다. 처음엔 이런저런 요청에 손사래도 쳐봤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 일이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책임을 지는 수밖에 더 있나. 몇 달 전부터 <전북지역 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 사연이다.

 

!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로다.<함께하는 품> 10-3호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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