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5. 21:22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둘째 아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다. 시답잖은 걸 가지고 배배꼬는 게 아니라 ‘학부모’ 얘길 꺼내려는 참이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는 아직 초등학교 학부모로 남아 있다. 맡고 있는 학부모회장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다. 새 학년도가 되었어도 3월 중순은 지나야 학부모총회가 열리고 새 임원진을 꾸리게 된다. 사업보고, 결산보고에 회칙도 손봐서 넘겨줘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회장을 비롯해 다음 집행부에 참여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는 거다. 그러니 여기저기 의견을 들어 후보군을 만들어내고 한 자리에 모아 ‘어르고 달래는’ 일까지 떠맡아야 했다.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내일이 입후보 마감일인데 그 동안 쏟은 노력이 설마 물거품이 되기야 하겠나.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많았던 초등학교를 떠나간다 생각하니 지난 3년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 분교 다니던 시절, 공개수업 모습
지금은 많이 무뎌졌지만 돌아보면 아이들 학교문제로 가슴쓰린 기억이 남아 있다. 처음 이사와 이 초등학교를 배정받았는데, ‘정원초과’라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코앞에 학교를 놔두고, 5키로 거리에 버스도 안 다니는 조그만 분교에 들여보냈다. 하루 두 차례, 승용차로 아이들을 등하교시켜야 했다. 그렇게 한 해가 흘러 큰 애는 졸업과 함께 읍내 중학교로 진학했고, 둘째는 5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둘째를 통학시키기 어렵게 됐다. 고심 끝에 사정을 얘기하고 애초 배정받은 초등학교로 옮겼다. 다행히도 새로운 환경에 그럭저럭 잘 적응해갔다.
큰 애가 문제였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가 하나도 없는 ‘외톨이’ 처지에 ‘학교폭력’까지 당하자 학교 다니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1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 나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고, 애써 아이를 설득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끝내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우격다짐으로 될 일도 아니거니와 불행을 억지로 참아내면서까지 반드시 학교를 다녀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리 흔쾌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불행한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그게 벌써 한 해 하고도 반년이나 지난 얘기다. 아이는 그 동안 ‘탈학교’ 생활에 익숙해졌고, 학교에는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
▲ 둘째 아이(6학년) 공개수업 모습
가끔 시간을 거슬러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기도 하는데 결론은 역시 똑같다. 아무리 미숙하다고 해도 아이에게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부모라 해서 ‘보호’를 명분으로 이 결정권의 본질적 영역을 침해할 수 없다고 본다. 설령 아이들의 결정이 일을 그르쳤다 하더라도 그 또한 아이들 삶의 한 부분이다. 어른과 견주어 더 많은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으니 ‘전화위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무튼 이번엔 둘째아이가 그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 녀석은 2년 전의 제 누나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길 바란다. <함께하는 품> 11-2호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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