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4. 23:22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살림살이를 시골로 옮긴 지 세 번째 겨울을 나고 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이 고장 겨울정취에 가슴이 설레더니 이젠 그것도 심드렁하다. 그 대신 식솔들을 떠올릴 때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낀다. 사실 농촌에서는 이 한겨울에도 시설채소로, 축산으로 쉴 틈이 없을 만큼 삶이 버겁다. 이 두 가지가 말고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에 나서야 생활비를 벌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현실에 애써 눈을 감는다. 그리 아등바등 살려했다면 무엇하러 시골로 내려왔는가 이 말이다. 좀 덜 먹고, 덜 쓰면 되지. 그래도 내가 쌀농사를 짓는데!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이리 생각하면 ‘조바심’이 한결 누그러진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겨울 속으로 빨려든다. 아니, 아직은 그렇다고 믿고 산다.
그래, 지난겨울엔 여기저기 쏘다니며 농한기를 만끽(?)했는데 이번에는 시절이 어수선한 탓에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엊그제 진안 겸이네 집에서 장수에서 건너온 진강이네와 함께 늦게까지 ‘신년회’라는 이름의 술자리를 가진 정도. 겸이네 동네서 열린 초등학생 겨울방학 ‘도서관캠프’에 둘째 아이를 데려다준 참이었다.
도서관캠프는 아이들 부모 또래의 어릴 적 놀이였던 팽이 만들어 돌리기, 자치기, 불(깡통)놀이, 비료포대 눈썰매 타기, 수박서리, 땅따먹기, 천렵 따위를 엮어 프로그램을 짜왔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맛들인 요즘 아이들에겐 좀 시시한 것들이라 처음엔 다들 쭈뼛거리게 마련. 그러나 한 번 재미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덤벼든다. 비록 1박2일 짧은 일정이라 맛뵈기에 그칠 뿐이지만 이렇듯 ‘몸으로 부닥치는 놀이’를 해보는 게 어디인가.
매번 새로운 놀이를 준비해오더니 이번에는 놀 거리가 바닥났는지 제기차기, 투호, 찰흙빚기 같은 뻔한 내용으로 짜여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도서관 방바닥에서 벌어진 조별대항 닭싸움에 흠뻑 빠져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튼 우리-민주노총 출신 귀농인-는 지난 3년 동안 이 아이들 방학캠프 덕분에 한 해에 두 번 남짓 쌓인 회포를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둘째가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면 참가자격이 없어진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아이들 캠프 핑계 김에 어른들이 어울릴 기회도 줄어들 걸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그리고 아쉽다. 가을걷이가 끝난 게 엊그제요, 아직 농한기 한복판인 줄 알았는데 벌써 농사철이 다가왔다니 말이다. 물론 기회가 영 사라진 것은 아니라 굳게 믿어보지만, 올 겨울은 이렇게 ‘초라하게’ 막을 내리는가 보다. .<함께하는 품> 10-2호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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