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4년째를 맞으며

2014. 3. 15. 21:04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시골살이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이따금 지금 잘 살고 있는지스스로 물어본다. 사람인지라 그때그때 소회가 다른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시골로 내려온 게 후회스럽지는 않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고.

 

10년 전 쯤, 불혹(不惑)을 지나 이제 부록으로 사는 인생이라며 킥킥대던 시절이 떠오른다. 민주노총에서 같이 일하던 벗들과 당위로서 운동을 떠나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누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운동 말고는 없다. 이 일을 정말 잘 하고 싶다고 했고, 아무개는 대학원에 복귀해서 전공과목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으며, 또 누구는 이제는 소설을 쓰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럼 나는?

 

생각해보니 그 때까지 나를 위해 어떻게 살지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충격이었다. 20년 가까이 그저 노동운동의 당위를 좇아 앞만 보고달려왔던 거다.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아가 가장 뜻 깊고, 값진 삶이라 철석같이 믿어왔다.

 

그런데 당위를 내려놓고 찬찬히 짚어보니 내게 어울리거나 내가 욕망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탐구욕같은 거였다. 혼자서 잃어버린 10년 찾기 프로젝트라는 걸 진행한 적이 있다. 일에 치여 10년 넘게 영화 한 편, 신간서적 한 권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걸 문득 깨닫고 그 문화적 공백을 메워보자는 것이었다. 비디오 대여점 단골이 됐고, 걸신들린 듯 책을 샀다. 하지만 공백은 너무 컸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먼지 앉은 책들은 쌓여만 갔다. 그 때 쯤 조금만 일하고 맘껏 읽을 수 있는 직장을 욕망하게 되었고, 몇 년 뒤에는 주경야독이란 매력적인 낱말에 끌려 시골로 내려왔다.

 

▲ 지난 1월 쌍용차 와락(평택)을 후원방문한 주영미, 권지영 대표, 김재호, 이정영(왼쪽부터)

 

그런데 일찍부터 여기에 자리 잡은 옛 동지들도 있었다. 내 멋대로 민주노총 전북 동창회라 부른다. 이들을 통해 귀농(귀촌)인들의 다양한 시골살이 모습을 훑어보자.

 

진안 사는 이정영(민주노총 전 조직국장)2001년 임실로 귀농했는데 이젠 정체가 모호해졌다. 물론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자꾸만 일을 벌인다. 마을사업도 열심이었고, 농산물가공 영농조합을 설립해 운영하더니 얼마 전에는 <마을학교>라는 교육협동조합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일한다. 현재 진안군 초등학교 방과후학교를 위탁운영하고 있다. 부부사이인 주영미(민주노총 전 노동안전국장)는 이태 전부터 간호사로 일하면서 마을사업에 힘쓰고 있다.

 

김재호(서비스연맹 전 교선부장)2005년 장수군 생태마을인 하늘소마을로 귀농해 유기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하고 있다. 농사 뿐 아니라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노동당 전북도당 부위원장, 장수군농민회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에는 농촌지역 민중의 집이라 할 <장수농민의집>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박진희(증권노조 전 정책국장)2009년 장수군 하늘소마을로 귀농해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지니스테이블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유기농 꾸러미 사업을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먹거리 정의(Food Justice) 관련 교육과 컨설팅도 진행한다. 특히 먹거리 정의를 이야기하는 30인의 밥상같은 행사를 통해 먹거리 양극화와 격차해소에 힘쓰고 있다.

 

조철(전 민주관광연맹 위원장)2010년 진안으로 귀농했지만 몸이 받혀주지 않아농사에서 손을 놓았다. 특급호텔 셰프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슬로푸드, 직거래 등 건강한 먹거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1년여 전에는 장수군 육십령휴게소를 낙찰 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돈까스와 스파게티 메뉴가 입소문을 타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끝으로 차남호. 올해로 시골살이 4년째다. 이제는 누가 봐도 새내기농사꾼 티를 벗었다.<함께하는 품> 11-3호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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