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0. 21:35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못자리를 둘러보고 오는 길이다. 달포 전만 해도 ‘꽃 타령’으로 날을 보냈는데 계절은 어느새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나간 꽃철이 아쉬운 들녘에는 뭉게구름인 듯, 얼룩인 듯 고운 자취가 남아 있다. 자운영 꽃밭. 우리 못자리를 품은 어우들, 발목까지 차오른 뚝새풀과 더불어 야트막한 수풀을 이뤘다. 그 ‘자줏빛 구름’에 눈이 닿기만 해도 끝없이 가라앉는 아득한 느낌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그러나 잠깐 사이일 뿐.
어차피 연분홍 봄날은 갔고 농사철로 접어들었다. 벼농사는 지난 4월 하순 이미 첫발을 떼었다. 지금은 볍씨 담그기를 시작으로 모 농사 단계를 지나고 있다. ‘모 농사가 반 농사’라고 했다. 모를 길러내는 기간은 한 달 남짓. 전체의 1/6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비중으로 치면 절반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 만큼 모 농사가 중요하고, 깍듯하게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보름 동안 지나온 과정도 실제 그랬다.
볍씨 담그기만 해도 염수선(鹽水選)-열탕소독-냉수침종으로 이어지는 세밀한 공정을 거쳤다. 찬물에 소금을 풀어 튼실한 볍씨만 골라내 소독한다. 흔히 화학약품(농약)으로 소독하지만 유기농은 섭씨 60도로 덥힌 물에 10분 동안 열탕을 한다. 열탕소독을 마친 볍씨는 찬물에 일주일 남짓 담가 촉(뿌리와 싹)을 틔운다.
촉이 나오고 나서 파종, 볍씨를 넣었다. 기계로 모를 내기 전에는 못자리 바닥에 곧장 볍씨를 뿌렸지만 지금은 플라스틱 모판에 넣는다. 보통은 통짜모판에 손으로 뿌리거나 지그를 대고 줄뿌림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파종기를 써서 포트모판에 파종한다. 그러면 뿌리가 실해지고 튼튼한 모로 키울 수 있다. 농약 없이 병충해를 견디려면 모가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는 그렇게 쌓아두었던 모판을 못자리로 옮겼다. 자그마치 1천2백 판, 45마지기(9천 평)에 심을 양이다. 서울 사는 벗들이 ‘농활’을 나오고, 우리 못자리 함께 쓸 창수 씨네 식구, 품앗이 일꾼들까지 열 명 넘게 손발을 걷어붙였다. 누구는 트럭 짐칸에 켜켜이 쌓인 모판을 내려놓고, 누구는 진창에 푹푹 빠지며 들어 나르고, 누구는 못자리 바닥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동네가 떠나도록 왁자했지만 정작 일하는 건 서툴기 짝이 없다. 한나절이 넘어서야 작업이 끝나고 시장을 반찬 삼아 늦은 점심을 들었다.
그 이튿날부터 들판은 다시 조용해졌다. 괭이자루 손에 쥔 구부정한 농사꾼 하나가 못자리를 둘러볼 뿐. 물꼬를 여닫아 물높이를 맞추고, 이랑에 씌운 부직포를 들춰 생육상태를 살피고, 이따금 고랑을 손본다. 벼농사 ‘제2막’을 앞둔 숨고르기인지도 모르겠다. 모 농사는 모내기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저만치 샘골 논을 살피러 가자면 자운영 꽃 흐드러진 들판을 가로지른다. 저도 모르게 한 숨이 새어나온다. 모 농사 얘기를 끄적이고 있지만 사실 가슴 한 켠은 늘 젖어 있다.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이제야 싹을 올리는 여린 모가 물에 흥건히 잠겨 있기라도 하면 갑자기 울컥해진다. 스스로 부끄럽고, 인간에 절망하며, 자본과 권력에 치떨린다. 아, 모질고 모진 세월이여! <완두콩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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