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9. 15:40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모든 일에는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집 올해 벼농사에서 가장 큰 고비는 바로 요즘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김매기가 한창이다. 모내기와 모 때우기, 웃거름 주기에 이어 전반기 농업노동이 최고조에 다다른 셈이다.
벼농사에서 가장 고단한 노동은 누가 뭐래도 김매기다. 오뉴월 뙤약볕 아래 구부정한 자세로 진창에 빠지며 풀을 뽑자면 등짝은 뻐근하고, 허리는 부러지고, 다리는 휘청댄다. 그렇게 한 줄을 매고 나면 된 신음소리가 절로 새나온다.
김매기가 고단하기로는 오랜 옛날부터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벌, 세 벌 씩 매다보면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게 된다. 그래서 세 벌 김매기가 끝나는 즈음인 음력 7월 보름에 백중잔치를 벌여 일꾼들의 노고를 위로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이젠 옛날 얘기 아니냐고? 하긴 이 개명한 시대에 웬 생고생인가 싶은 이도 있을 게다. 제초제 한 방이면 웬만한 풀은 ‘다잡아’, ‘논다매’... 속삭이는 농약회사가 어디 한 둘인가. 실제로 웬 만큼 부작용을 감수하면 제초제의 효능은 탁월하다. 그러니 그 유혹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짓자는 거였고, 차라리 농사 때려치울지언정 농약과 화학비료는 쓰지 않겠노라는 거였다. 그러니 처음부터 ‘화학농법’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농법이라면 그저 열대지방에서 들여온 왕우렁이의 힘을 빌리는 정도. 우렁이가 풀을 잘 먹도록 모내기 전부터 넉넉히 물을 대려 동동거렸지만 올해는 날씨가 가물어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논풀이 수북이 올라오고 말았다.
그리 되면 손으로 매주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없다. 열흘 전 쯤 그렇게 김매기에 들어갔다. 상태가 가장 심각한 논배미부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내심 한 보름 정도면 모두 끝낼 수 있겠거니 가늠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피사리’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뜻밖에 물달개비가 창궐한 것이다. 심지어 두 마지기(4백평)를 가득 뒤덮은 논배미까지. 온종일 매달려 뽑아냈지만 전체의 1/10에도 못 미쳤다. 두 마지기 김매기에 열흘 넘게 걸린다는 얘기 아닌가. 그야말로 ‘멘붕’ 상황이다.
여기저기 하소연했지만 속 시원한 대책이 없다. 결국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먼저 제초기계로 풀을 초벌 제압한 뒤 우렁이를 더 많이 넣기로 했다. 물달개비가 빽빽하게 올라온 다섯 배미(12 마지기)가 그 대상. 제초바퀴가 다섯 달린 중경제초기를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려다가 온종일 논바닥을 밀었고, 오늘 새벽 우렁이 40Kg을 사다 넣었다. 진인사대천명. 이제 우렁이의 활약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러나 김매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피를 뽑아야 하는 논이 스물 닷 마지기나 남았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때로는 푹푹 찌는 논배미에서 숨이 멎어버리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이농인구의 대부분은 아마 이 김매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정든 고향을 떴을 게 틀림없다고.
올해 벼농사 뿐 아니라 농사에 귀의한 내 후반기 삶도 지금 큰 고비를 지나고 있지 싶다. 올 가을,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이럴 때도 있었군!’ 멋쩍게 웃을 수 있기를. <완두콩 2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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