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 08:57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마을 앞 초등학교에서는 지금, ‘풍년기원 단오 맞이 한마당’이 한창 펼쳐지고 있다. ‘친환경농법, 농촌사랑 그리고 생태체험’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단오절에 즈음해 이 고장 유기농 벼 작목반과 함께 여는 지역사회공동체의 축제마당으로 올해가 10회 째다.
10시가 조금 넘어, 한마당의 꽃이라 할 모내기 체험 행사가 열렸다. 사실 수 십 명이 늘어서서 못줄에 맞춰 손으로 모를 내는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다. 오늘처럼 ‘체험행사’로나 명맥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나로서는 그렇게라도 아이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학교의 노력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모를 낸 곳은 학교정문 바로 앞 찬민이네 논. 학년 별로 울긋불긋 티셔츠를 맞춰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선다. 발에 닿는 진흙의 미끈한 느낌이 낯설었는지 괴성을 질러댄다. 선생님과 어른들이 일러주는 대로 고사리 손이 모를 꽂아 넣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옷과 얼굴 여기저기에 흙탕물이 튀겨 있다. 유치원과 저학년 아이들은 제초용 우렁이를 한 움큼씩 받아 논에 던져 넣는다. 내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떠나지를 않는다.
한 마지기 남짓 모를 심는 체험은 한 시간도 안 돼 끝났다. 둘째 아이가 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학부모 자격이 없어졌지만, 나 또한 모내기 체험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지난해 학부모회장이라는 인연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내기 체험에 내가 길러낸 모를 쓰는 까닭이다. 시간에 맞춰 모판을 스무 개 쯤 뜯어내 날라주고, 전날 받아둔 우렁이를 나눠주고... 큰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함께 품을 들이는 게 당연한 분위기가 나는 좋다.
수돗가에서 흙탕물을 대강 씻어낸 뒤 새참 국수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몰아넣고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다. 여유 잡고 본때 나게 쓸 틈이 없다. 빨리 써 보내고 다시 나가 봐야 한다. 나흘 뒤엔 우리집 마흔 닷 마지기 모내기가 시작되는 까닭이다.
당장 써레질 할 논에 물을 대야 한다. 그런데 날이 가물어 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농수로를 낀 논은 아직 큰 어려움이 없지만, 관정을 파서 모터펌프로 물을 대는 논은 심각하다. 수량이 모자란 탓에 물이 품어지질 않는다. 지루하게 차례를 기다리며 발을 구르다가 다른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대고 있다. 타는 들녘만큼이나 애가 탄다. 이삼일 뒤 비소식이 있어 다행이지만, 예보가 빗나가기라도 한다면 수로에서도 ‘물꼬싸움’이 벌어질 게 틀림없다. 안밤실 수로에서는 어제 오늘 그 조짐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지금 물에만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써레질 끝난 논은 바닥 높낮이를 골라야 한다. 써레질을 앞둔 논에는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두렁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앙기를 운전할 작업자를 물색하고, 모판을 대줄 일꾼도 넉넉히 찾아놔야 한다. 모내는 날부터 역산해서 어긋나지 않게 작업일정을 짜고, 빈틈없이 준비를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잖으면 막상 닥쳐서 낭패를 보고 만다.
이제 다시 나가봐야 한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모내기철. 기후변화 탓에 들녘은 일찌감치 불볕더위에 휩싸여 있다. 기온은 이미 30도를 훌쩍 넘어섰지만, ‘물을 찾아서’ 저 한낮의 열기 속으로 뛰어든다. <완두콩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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